"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나?" 별 일이네. 유난히 조용한 집 안에 들어서며 쵸로마츠가 중얼거렸다. 6명 모두 백수이다보니 집 안에 아무도 없는 일은 상당히 드믈었다. 쵸로마츠를 제외한 형제들이 열쇠를 안 들고 다닐 정도로. 열쇠를 꺼낼 필요도 없이 스르륵 열린 문을 떠올리며 쵸로마츠는 짧게 혀를 찼다. 벗어놓은 신발을 정리하려던 쵸로마츠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가지런한 초록색 신발 근처에 똑같은 디자인의 빨간 신발이 나뒹굴고 있었다. 쵸로마츠는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갔다. 조심히 걷는데도 오래된 집이라 삐끄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뻑뻑한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밀자 시원한 바람이 쵸로마츠를 맞아주었다. 에어컨이 웅웅 돌아가고 있는 방 한 가운데에 이불이 동그랗게..
※밴드마츠※육둥이 모두 남남+동갑. 형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방 안을 가득히 채운다. 큰 손이 바이올린 케이스를 쓸어내리면 먼지가 날아올라 공기 중에 부유했다. 내가 차향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테이블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으면 삼촌은 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이내 햇살을 등에 업은 삼촌이 바이올린 활을 잡고 눈을 감은 채 숨을 짧게 들이마쉰다. 나도 그런 삼촌을 따라해본다. 눈을 감는 것만 빼고. 곧이어 삼촌만큼이나 부드럽고 따뜻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미소를 머금은 채 연주를 하는 삼촌의 모습은 꼭 바이올린과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느라 삼촌이 기껏 타주신 차는 점점 차가워져가지만 나는 반대로 점점 뜨거워져만 간다. 흥분해서 의자에서 뛰어내려 삼촌 곁으로 쪼..
To. 프완님 쵸로마츠 시점 선생님과 나 나와 선생님 나와 당신 #1 반장과 나 "선생님, 채점 다 했어요." 짜증을 가까스로 억누른 목소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경마 신문을 들추었다. 시험지 뭉치를 들고 서 있는 우리 반장은 불평불만을 얼굴로 다 말하고 있었다. 제 딴에는 참는 거겠지만 결국 다 얼굴에 드러나 버리는 점이 귀엽다. 나는 씩 웃으며 쵸로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 역시 빠르네. 수고했어, 반장." "앞으론 이런 거 시키지 좀 마세요. 채점은 선생님이 하셔야죠." "미안, 미안~ 양이 꽤 많다 보니 성적 확인 날까지 못 할 것 같아서~" 사실은 널 잡아두기 위한 핑계지만. 시험 전후에는 배려로 과제도, 행사도 없다 보니 이런 이유 아니면 교무실에 부를 거리도 없다. 나야 반장도 보고, 일도..
프완(@f_wan13)님의 연성을 보고 쓴 글입니다.프완님 연성은 이쪽! 오소쵸로_상대적 이유 집 안이 조용하다. 개미 한 마리의 발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그곳에서 너는 웅크리고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 나즈막한 저녁 노을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같은 집 안에 있는데도 이 문지방 하나로 나와 너의 세계가 끊어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차마 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차마 무슨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결국 너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있는 이곳엔 저녁노을조차 닿지 않는다. 담배 한 대가 간절했지만 네가 나를 알아챌까봐 억지로 참았다. 쵸로마츠, 감정이란 건 상대적이라고 생각해. 손으로 만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감각으로 어렴풋이 짐작하잖아...
전편 [오소쵸로]너만의 이야기 上 그럼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요. 나 네 이야기가 듣고 싶어! 이 대화는 두 사람만의 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쵸로마츠가 들고 다니던 크고 두꺼운 책은 어느 새인가 그저 소지품으로 전락해버렸다. 가족들의 이야기, 오빠와 동생들의 이야기, 어머니의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진 이야기, 돈을 벌기 위해 상인단에 들어간 이야기, 도적단의 습격을 받은 이야기, 겨우 도망쳐 나와 우연히 한 마을에서 꼬마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것을 계기로 이야기꾼이 된 이야기, 이야기꾼으로서 여행을 해온 이야기 등... 가상의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달리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는 쵸로마츠를 오소마츠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았다. 양피지에 쓰지 않은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오소마츠가 일을 하는 시간..
전편 선생님과 나 나와 선생님 기껏 병문안 간 것도 무색하게 오소마츠 선생님은 하루를 더 결석하셨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차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책상에 엎드려있었다. 머리도 복잡하고 그래서인지 영 기운이 없다. 선생님이 오셨으니 내가 대신 조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돌리며. 엎드려 있으니 누군가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자는 줄 알고 깨우는 걸까. 그런데 우리 반에 대뜸 내 머리에 손 올릴 정도로 친한 녀석이 있었던가? "우리 반장 어디 아픔?" 선생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튀었다. 계속 자는 척 했으면 좋을 텐데 망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느리게 몸을 켰다. 조심스럽게 선생님을 바라보니 선생님은 날 보고 씩 웃으셨다. "어제 밤에 뭐 했어? 혹시 혼자 딸딸─" "아니거..
전편 [오소쵸로]선생님과 나 "선생님은 또 지각이신가..." 선생이 지각이라니 참 웃길 노릇이다. 더 웃긴 건 나도, 반 아이들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다는 것이겠지만. 예비종이 울려도 시끌벅적한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전달사항을 간단히 말했다. 어느 누구도 선생님은 언제 오시는지 묻지 않고 그냥 내 말에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교탁에서 자리로 돌아가고 나자 교실은 소근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나름 시끄럽지 않게 떠든다고 떠드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떼로 모이면 소란스럽다는 걸 모르는걸까. 그 소리들도 수학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싹 사그라들었지만 말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를 숫자와 알파벳과 기호의 나열을 보다가 졸음을 쫓으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비가 왔어서 그런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
쵸로마츠랑 싸웠다. 이유는 터무니 없다. 내가 쵸로마츠를 '내 아내~'라고 부르며 다른 애들 앞에서 스킨쉽을 해댔기 때문이다. "진짜 왜?!" 우리 사귀고 있잖? 다른 애들도 그걸 알고 있잖?? 그런데 왜 스킨쉽 못 하게 하는 건데!!! 아무리 찡찡거려봐도 들어주길 상대는 내 곁에 없다. 알면서도 분에 벅차 한참을 더 버둥거리다가 결국은 제 풀에 지쳐 바닥에 널부러졌다. 지친다. 몸도, 마음도. 엎드려 누워있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청명하기만 했다. 이렇게 좋은 날 나만 빼고 다 밖에 나가서 좋냐, 이것들아? 형아 외롭거든? 한숨을 푹 쉬고 느리게 일어나 창가에 기대어 앉았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창문을 열었다. 3월이라지만 아직 바람이 차다..
※선생님 오소마츠 X 학생 쵸로마츠 "선생님, 채점 다 했어요." 목구멍까지 솟구처오르는 욕지거리를 꾸역꾸역 삼켜내고 일부러 소리나게 시험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제서야 뒤집어 쓰고 있던 경마 신문을 치운 선생님은 날 보면 능청스레 웃으셨다. "오~ 역시 빠르네. 수고했어, 반장." "앞으론 이런 거 시키지 좀 마세요. 채점은 선생님이 하셔야죠." "미안, 미안~ 양이 꽤 많다보니 성적 확인날까지 못 할 것 같아서~" 그놈의 경마랑 빠칭코만 안 하면 충분히 다 하고 남을 텐데요?! 얄궂은 얼굴에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채점이 끝난 시험지를 훑어보고 있었다. 내 신세, 어쩌다 이렇게까지 떨어진 거지. 한숨을 푹푹 내쉬어봐도 이미..
※급하게 쓴 거라 퀄리티 주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이 흔들린다. 시끄러운 소리도, 흔들림도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들어올 리는 것은 벅찼다. 수마와 소란스러움을 저울질하며 꿈과 현실 세계를 왔다갔다 하던 나는 결국 큰 반동과 함께 몸이 튀어오르고 나서야 눈을 떴다. 뜨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강렬한 불빛에 다시 눈을 감아버렸지만. "일어났어?" 익숙한 목소리. 그렇지만 이런 시간에 듣는 것은 낯선 오소마츠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인간이 나보다 먼저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아직도 졸려서 그런지 큰 감흥은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팔로 내 눈을 가리며 물었다. "지금 몇 시야?" 졸음에 젖어 목소리가 푹 잠겨있었다. 술을 마신 탓에 목이 몹시 말라 침을 모아 겨우 삼켰다. 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