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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병문안 간 것도 무색하게 오소마츠 선생님은 하루를 더 결석하셨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차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책상에 엎드려있었다. 머리도 복잡하고 그래서인지 영 기운이 없다. 선생님이 오셨으니 내가 대신 조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돌리며. 엎드려 있으니 누군가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자는 줄 알고 깨우는 걸까. 그런데 우리 반에 대뜸 내 머리에 손 올릴 정도로 친한 녀석이 있었던가?
"우리 반장 어디 아픔?"
선생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튀었다. 계속 자는 척 했으면 좋을 텐데 망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느리게 몸을 켰다. 조심스럽게 선생님을 바라보니 선생님은 날 보고 씩 웃으셨다.
"어제 밤에 뭐 했어? 혹시 혼자 딸딸─"
"아니거든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선생님은 다 이해해용~"
"그러니까 아니라니까요!"
왁왁거리며 손을 떨쳐내니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셨다. 오늘도 반장은 기운이 넘치는구나~ 오늘도 또 머리를 헝클어 놓고는 선생님은 씩씩하게 교탁을 향해 걸어갔다. 반 애들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엉망이 된 머리를 정돈했다. 오소마츠 선생님은 예전처럼 기운 넘치게 조회를 시작했다. 그래, 예전처럼. 나는 그때의 기억때문에 이렇게 머리가 핑핑 도는데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요? 아니면 그때 열 엄청 나셨으니 기억 못 하시는 건가요? 어느쪽이든 속이 상하는 건 나뿐이었다. 나만 아직도 그때의 열기에 휩쓸리고 있다. 오직 나만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복잡해진 머리를 감싸며 책상에 엎드렸다.
*
"마츠노, 너 괜찮아?"
"헤? 아, 응. 괜찮아, 괜찮아."
당번인 카노우가 칠판 지우개 두 개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과학 선생님이 칠판을 한 가득 채운 탓인지 지우개 두 개 다 아주 새하얬다. 내 질문에 카노우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창문을 살짝 열고 칠판 지우개를 털기 시작했다. 새하얀 가루가 마치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오늘 하루 종일 너답지 않게 멍 때리던데."
"정말 괜찮아. 신경 써줘서 고마워."
"네가 괜찮다면야 다행이지만..."
떨떠름해하던 카노우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오소마츠 선생님이 너 찾으셨어. 카노우는 말을 마치고 바로 창문을 닫았다. 새하얬던 칠판 지우개 두 개는 본래의 색을 되찾은 후였다. 나는 걱정말라는 의미로 손을 작게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엄마가 선생님 오시면 같이 먹으라고 넣어둔 과일 도시락까지 챙기고 교무실로 걸어갔다. 보나마나 오랜만에 점심이나 같이 먹자는 용무로 불렀을 게 뻔하다.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하는 분이니까.
"하아..."
어쩐지 영 기운이 없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아니면 나만 신경쓴다는 사실이 허망해서일까. 아무튼 전부 전부 그 선생때문이다. 짜증나는데 미워할 수가 없다. 옥상에서의 얄궂은 표정이, 레스토랑에서의 미소가, 선생님 집에서의 붉은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든다. 자꾸만─
"쵸로마츠?"
─마음이 흔들린다. 고개를 들자 눈 앞엔 익숙한 붉은 저지를 입은 오소마츠 선생님이 서계셨다.
"선생님..."
별안간 선생님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선생님이 성큼성큼 내 쪽으로 걸어왔다. 엄청난 기세에 뒤로 주춤 물러섰다. 어째서인지 도망가고 싶었다. 저 의중을 모를 검은 눈동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도망치고 싶지 않은걸까.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주저 앉는다. 흔들리는 시야에 또렷하게 보이는 것은 선생님의 붉은 색뿐이었다.
"너 괜찮아?"
선생님답지 않은 다급한 어조.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선생님의 품에 안겨있었다. 선생님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눈 앞에 있다. 의중을 모르는 검은 눈동자가 아니다. 그때처럼, 당황한 선생님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비추고 있다. 선생님의 옷자락을 붙잡자 선생님은 더욱 단단하게 나를 받춰주었다.
"선생님, 나 좋아해요?"
내뱉어진 말, 흘러넘친 생각, 새어나오고 만 마음. 내 질문에 선생님은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손으로 내 이마와 눈을 덮어버렸다. 이 와중에 손이 차가워서 기분이 좋았다.
"역시 열 나네. 너 감기 걸렸지?"
어라? 듣고보니 열이 나는 것 같기도... 오늘 하루 종일 기운 없던 것도 감기때문이었나...? 아무튼 그것도 오소마츠 선생님탓이지만. 선생님은 나를 가볍게 업더니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 수업..."
"괜찮아. 나 6교시 수업말고는 없어서 시간 비어."
"아뇨... 제 수업..."
"그쪽이냐! 아프면 그냥 쉬어, 바보야!"
누구 보고 바보래. 그런 생각을 하며 너른 등에 기대어 스르륵 잠에 빠졌다.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불꺼진 전등이 보인다. 커텐으로 창문을 가렸어도 이정도로 밝은 것을 보면 아직 낮인 모양이다. 몰랐는데 침대에 누워있으니 몸이 무거운 게 절절히 느껴진다. 물에 젖은 솜인형이 된 기분이다. 조금 더 잘까 생각할 즈음 문이 열렸다. 문 틈으로 빛이 자비없이 쏟아진다. 눈이 부셔 눈을 감자 차가운 손이 또 이마에 닿는다.
"선생님."
"오, 깨웠어? 미안, 미안~"
전혀 미안한 말투가 아닌데요. 생각과 달리 또 엉뚱한 말이 튀어나가고 만다.
"저한테 할 말은 그거뿐이에요?"
나는 똑바로 선생님을 보았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올곧게. 내 시선에 오소마츠 선생님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선생님은 바람 빠지는듯한 소리를 내며 약하게 웃으셨다. 호탕하지도, 장난스럽지도, 얄궂지도 않은 수수한 미소다. 평소와는 다른 미소인데 오소마츠 선생님다운 미소다 싶었다.
"네 질문의 답은 때가 되면 해줄테니까 기다려."
오소마츠 선생님이 내 눈을 가렸다. 거부하지 않고 나도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게 언제인데요."
"글쎄다."
"비겁해."
"어른은 원래 비겁한 법이지."
기다려줄 수 있어?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쪽이 비겁하게 나온다면 나는 치사하게 나올 거다. 색색 숨만 쉬고 있으니 오소마츠 선생님은 낮게 웃으며 손을 뗐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선생님은 내 곁에 없었다. 오직 살짝 열린 문 틈만이 나와 선생님의 대화가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교정 곳곳에 심어놓은 꽃들이 하나둘 꽃봉오리를 터트린다. 겨우내 삭막했던 학교가 조금은 다채롭게 보인다. 벚꽃은 아직 피려면 이르지만 꽃망울이 탐스러운 것이 금방이라도 분홍빛 비를 내릴 것만 같다. 봄바람은 아직 차지만 말이다. 오소마츠는 옥상 펜스에 기대어 꽃들과는 반대로 검고 칙칙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보았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흥분, 감동 등이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이번이 처음 맞이하는 졸업식은 아니다만 매일같이 얼굴 마주하던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는 걸 보고 있으면 감회가 새로웠다. 올해는 특히나 더 그런 것 같다.
"이젠 말해줄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건 네가 있어서일까. 오소마츠는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빙그레 웃었다. 어느새 훌쩍 커 제법 늠름해진 쵸로마츠가 검은 졸업장통을 들고 비딱하게 서있었다.
"무슨 말인지 선생님은 모르겠는걸~ 국어교육학과 합격 축하는 충분히 해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일부러 능청스럽게 말꼬리를 올리며 오소마츠는 펜스에 기대어 섰다. 쵸로마츠는 표정 관리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인상을 썼다.
"당신 이제 내 선생님 아니잖아."
오소마츠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발칙한 제자가 자신과 같은 학교, 자신과 같은 학과에 진학했다는 게 새삼스레 신기했다. 물론 그 배후에는 '감기때문에 수업 빠졌으니 선생님이 알려주마'라는 말로 시작된 1 대 1 과외와 상담이 있은 덕분이지만 말이다.
"헤에~ 어른한테 하는 말버릇 보소~ 이젠 네 선생님 아니어도 어른은 어른이거든요? 이런 애가 선생님이 된다니 일본의 미래가 걱정이다, 걱정."
"당신같은 사람도 선생님 되는 판국에 무슨!"
"어이쿠, 무서워라."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홧김에 내던져버린 졸업장통을 재빨리 주웠다. 조금 느리게 쵸로마츠에게 다가간 오소마츠는 부드럽게 웃었다. 지난 2년간 꼬박꼬박 밥 먹인 게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어느새 눈높이가 비슷해있었다.
"우리 쵸로마츠 많이 컸네."
"이제 애 취급 좀 그만─"
오소마츠는 말이 끝나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쵸로마츠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사고가 아닌 자의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쵸로마츠를 탐했다. 당황한 쵸로마츠도 대응해보려 했으나 경험 없는 자가 경험 있는 자를 이길 리가 만무했다. 오소마츠가 혀로 혀, 볼 안 쪽, 치열, 입 천장을 헤집고 다니니 점차 머리가 몽롱해지고 몸에 힘이 빠져간다. 도망 못 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허리를 휘어잡았다. 반사적으로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목에 팔을 감았다. 청춘의 한복판에서 두 사람은 청춘의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몇 분 후, 오소마츠가 만족스럽다는듯이 웃으며 입술을 떼고 쵸로마츠는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정신이 몽롱해서인지 눈이 살짝 풀려있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태양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쵸로마츠의 거칠어진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던 오소마츠는 일부러 더 얄밉게 속삭였다.
"역시 덜 컸네."
"읏... 비겁해... 갑자기 키스하고."
"어른은 원래 비겁한 법이라니까?"
너도 이젠 어른이지만. 오소마츠는 그리 말하며 쵸로마츠 손에 졸업장통을 쥐어주었다. 흔들림없는 검은 눈동자가 서로 마주했다.
"좋아한다, 쵸로마츠."
"오소마츠, 좋아해요."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한다는 말이 너무나도 새삼스럽고 낯간지럽게 느껴졌다. 좋았으! 선생님이 한 잔 산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손을 잡고 기세 좋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으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쵸로마츠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선생이라서, 반장이라서 서로 빙빙 돌아왔던 그 길을 이제는 이렇게 손을 잡은 채 함께 걸어갈 것이었다.
공백 미포함 3,684자
예이! 이걸로 선생님과 반장과 우리 시리즈 끝입니다!!!
큰일났어요. 해야할 일도 제대로 안 했고 내일 학교 가는데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이거 썼어요.... 역시 세상에선 딴짓이 제일 재미있는 법이네요.(글러먹음)
아무튼 간에 오랜만에 쓴 시리즈편이 끝이 났습니다!! 뭐, 한 편 한 편이 짧은 편이라 시리즈라 하기에도 좀 궁색하네요. 아무튼 나눠서 올렸으니까 시리즈인 걸로... 제가 쓴 오소쵸로 글 중에서 심장시리즈를 제일 좋아하는 편인데 심장 시리즈 다음으로 청춘청춘한 글을 써서 즐거웠습니다. 요새 청춘이 끌리네요... 막 간질간질하고 풋풋한 느낌이 좋은...ㅠ
가볍게 시작한 글이고, 쓰는 저도 그냥 편하고 간단하게 썼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랐어요. 다들 청춘 좋아하시는 건가...? 이유야 어찌되었든 비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밤 보내시고, 좋은 꿈도 꾸시고 좋은 일주일 시작하시길 바랄게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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