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편 [오소쵸로]수호천사 쵸로마츠가 죽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인간에게. 뒤늦게 얘기를 듣고 달려가보니 쵸로마츠는 내가 모르는 모습으로 쓰러져있었다. 내가 아는 쵸로마츠는 강하며 아름답고 피를 묻히는 걸 싫어했다. 그런데 내가 본 쵸로마츠는─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 비명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괴성이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목소리는 갈라지고 내 안의 뭔가가 무너져내렸다. 결코 굽힌 적 없던 무릎을 꿇고 피웅덩이를 헤짚으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아무리 네 이름을 외쳐도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일이 없었다. 「오소마츠형.」 그 한 마디가 없어졌다는 것이 이렇게도 나를 망가뜨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보스...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
※마피아 오소X니트 쵸로 For. 솔 어렸을 때 그런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수호천사가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애니메이션. 어린 나는 언젠가 내 앞에 수호천사가 나타나면 무슨 소원을 빌 지 생각하곤 했다. 일단 형제들이랑 같이 쓰는 방말고 나만의 방을 달라고 해야지. 거기엔 내가 뒹굴거려도 남아도는 큰 침대가 있고, 책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가득 있는 거야. 과자든, 어묵이든, 뭐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때에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래도 부모님은 잔소리도 하지 않고 오냐오냐 나를 귀여워 해주는 거지. 어린 나는 키득거리며 어린 아이다운 상상을 새하얀 스케치북에 그리며 잠들었었다. 다 쓴 스케치북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듯이 나이가 다 찬 나도 그런 상상을 잊..
※흑오소X마피아 쵸로※직간접적인 살인 묘사 있습니다.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금세 굵어져 사납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튀어오르는 빗방울이 사람들 발길을 재촉하고, 소란스럽던 골목이 텅 비어가기 시작한다. 먹구름이 드리워져 어두운 와중에 금빛으로 탈색된 머리가 빛난다. 인적 드믄 골목의 더 안 쪽, 한 쓰레기통 옆에 한 소년이 웅크려 있었다. 검은 후드는 비를 맞아 더 진한 색으로 바뀌어 가고, 손에 묻어있던 새빨간 피는 피에 씻기어간다. 붉은 기를 머금었던 날붙이에 비친 자신을 노려보던 소년은 아무말 없이 칼을 집어던졌다. 딱딱한 벽에 부딪힌 칼은 물웅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유독 하얘보이던 손을 바라보던 소년은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피는 사라졌어도 찌르던 감각은 생생히 손에 남아있었다. "토..
For. 프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 그건 용서받지 못할 마음을 품은 나에게 있어선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형이 나를 보며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떠올리면 설렘과 죄악감에 심장이 옥죄어왔으니까. 동성에 형제에 같은 얼굴. 그런 사람에게 사랑을 품는 것은 아마도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로 오소마츠형이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땐 믿을 수가 없었다. 상상과 다르게 오소마츠형은 웃지 않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도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나도 좋아한다고, 오소마츠형을 사랑한다고 말해야할 텐데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나와 사귀어줄래?'라고 힘주어 말하는 오소마츠형에게 나는 그저 고개..
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약 70억명이 사는 지구에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반하고 마음을 서로 나눌 확률. 계산은 안 해봤어도 두 사람이 만난다는 기본 전제부터 확률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다는 건 잘 알겠다. 그렇다면 저 문장에 '그 사랑은 여섯 쌍둥이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한정한다'는 조건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의미없는 숫자들을 노트에 수도 없이 휘갈겼었다. 현기증이 일어 책상에 엎어져도 도저히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숫자들의 나열에 그 사람의 이름이 파묻혀 사라져야만 했으니까. 누군가는 한창 좋을 때라고 말하는 고등학교 시절, 그때의 난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고 쓰라리게 사랑의 고통을 홀로 삼켜야했다."다녀왔습니다." "여! 쵸로마츠, 한 잔 할래?" 막 ..
※미스테리au※천호 오소마츠X꽃꽃이사 미도리토 쵸로스케X기자 아오구 카라츠구※유혈 및 살인 소재가 있습니다. 덥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훅 끼치는 열기에 시사카 하지메는 표정을 확 구겼다. 나무 그늘로 피신한 그의 얼굴에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이 비추었다. 산이 있어 사방엔 나무가 가득하고, 그만큼 매미소리가 넘쳐난다. 이 푸르른 곳과 어울리지 않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버스는 떠나갔다. 공백이 가득한 버스 시간표를 들어다본 하지메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하루밤에 끝날 거라고 기대도 안 했어. 가방을 고쳐매고선 그는 쭉 주변을 살펴보았다. 내린 곳이 살짝 언덕께라서 아카츠카 마을이 어느 정도 내려다보았다. 이렇다 할 큰 건물없이 자그마한 주택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평화..
"아쿠아리움?" "응! 아쿠아리움! 이벤트로 할인권 받았다고!" "무료 입장도 아니고 할인권? 돈이 어디있다고." "아, 거참 비싸게 구네." 쵸로마츠는 기가 찬다는듯이 콧방귀를 끼었다. 눈 앞에 대놓고 아쿠아리움 할인권을 흔들어도 쵸로마츠는 구인 잡지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떼를 써봐도 쵸로마츠는 미동이 없다. 하는 수 없지. 나는 잠시 할인권을 내려놓고 뒤에서 쵸로마츠를 껴안았다. 두 팔에 감겨있는 허리가 더 얇아진 것 같다.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부비적거려도 쵸로마츠는 여전히 미동이 없다. 그건 즉, 싫은 것도 아니란 거잖아? 솔직하지 못한 게 성가시면서도 귀엽다. 장난스레 귀에 입김을 불고 농밀하게 속삭였다. "우리 데이트 안 한 지 오래되었잖아?" "그야 누구씨가 맨날 경마장, 파칭코로 돈을..
이전 편 [오소쵸로]Expressivo 봄이 가려면 날짜 상으로는 아직 남았건만 햇살이 제법 뜨겁다. 한 손으로 해를 가리며 몸을 뒤로 물려 나무 그늘 아래로 숨었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내 손에 초록빛이 내려온다. 눈을 두어번 깜빡고는 손목시계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1시 27분. 곧 있으면 약속한 시간이었다. 카라마츠에게 조금씩 기타를 배우던 내가 기타를 보러가고 싶다고 하니까 카라마츠가 매우 기뻐하며 함께 악기점에 가자고 권한 게 어제, 그리고 약속 시간까지 이제 1분. 한숨을 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말이라 바삐 오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먼저 권하기는 했지만 그 녀석이 제 시간에 올 리가 없지. 헛웃음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