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 "응! 아쿠아리움! 이벤트로 할인권 받았다고!" "무료 입장도 아니고 할인권? 돈이 어디있다고." "아, 거참 비싸게 구네." 쵸로마츠는 기가 찬다는듯이 콧방귀를 끼었다. 눈 앞에 대놓고 아쿠아리움 할인권을 흔들어도 쵸로마츠는 구인 잡지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떼를 써봐도 쵸로마츠는 미동이 없다. 하는 수 없지. 나는 잠시 할인권을 내려놓고 뒤에서 쵸로마츠를 껴안았다. 두 팔에 감겨있는 허리가 더 얇아진 것 같다.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부비적거려도 쵸로마츠는 여전히 미동이 없다. 그건 즉, 싫은 것도 아니란 거잖아? 솔직하지 못한 게 성가시면서도 귀엽다. 장난스레 귀에 입김을 불고 농밀하게 속삭였다. "우리 데이트 안 한 지 오래되었잖아?" "그야 누구씨가 맨날 경마장, 파칭코로 돈을..
이전 편 [오소쵸로]Expressivo 봄이 가려면 날짜 상으로는 아직 남았건만 햇살이 제법 뜨겁다. 한 손으로 해를 가리며 몸을 뒤로 물려 나무 그늘 아래로 숨었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내 손에 초록빛이 내려온다. 눈을 두어번 깜빡고는 손목시계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1시 27분. 곧 있으면 약속한 시간이었다. 카라마츠에게 조금씩 기타를 배우던 내가 기타를 보러가고 싶다고 하니까 카라마츠가 매우 기뻐하며 함께 악기점에 가자고 권한 게 어제, 그리고 약속 시간까지 이제 1분. 한숨을 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말이라 바삐 오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먼저 권하기는 했지만 그 녀석이 제 시간에 올 리가 없지. 헛웃음을 지..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나?" 별 일이네. 유난히 조용한 집 안에 들어서며 쵸로마츠가 중얼거렸다. 6명 모두 백수이다보니 집 안에 아무도 없는 일은 상당히 드믈었다. 쵸로마츠를 제외한 형제들이 열쇠를 안 들고 다닐 정도로. 열쇠를 꺼낼 필요도 없이 스르륵 열린 문을 떠올리며 쵸로마츠는 짧게 혀를 찼다. 벗어놓은 신발을 정리하려던 쵸로마츠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가지런한 초록색 신발 근처에 똑같은 디자인의 빨간 신발이 나뒹굴고 있었다. 쵸로마츠는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갔다. 조심히 걷는데도 오래된 집이라 삐끄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뻑뻑한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밀자 시원한 바람이 쵸로마츠를 맞아주었다. 에어컨이 웅웅 돌아가고 있는 방 한 가운데에 이불이 동그랗게..
※밴드마츠※육둥이 모두 남남+동갑. 형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방 안을 가득히 채운다. 큰 손이 바이올린 케이스를 쓸어내리면 먼지가 날아올라 공기 중에 부유했다. 내가 차향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테이블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으면 삼촌은 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이내 햇살을 등에 업은 삼촌이 바이올린 활을 잡고 눈을 감은 채 숨을 짧게 들이마쉰다. 나도 그런 삼촌을 따라해본다. 눈을 감는 것만 빼고. 곧이어 삼촌만큼이나 부드럽고 따뜻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미소를 머금은 채 연주를 하는 삼촌의 모습은 꼭 바이올린과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느라 삼촌이 기껏 타주신 차는 점점 차가워져가지만 나는 반대로 점점 뜨거워져만 간다. 흥분해서 의자에서 뛰어내려 삼촌 곁으로 쪼..
To. 삼족보행 오후 9시. 한참 바라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시 기다리면 창문에서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느리게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면 일언반구도 없이 날아드는 건 새하얀 종이컵 하나. 컵에 연결된 붉은 실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네가 들뜬 표정으로 똑같은 종이컵을 꼬옥 쥐고 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 보네. 찌그러진 종이컵을 귀에 갖다대면 오늘도 종달새마냥 종알종알 떠드는 네 목소리가 내게 닿는다.집에 가는 길에 고양이를 본 일, 밥만 얻어먹던 고양이가 드믈게 내게 애교를 부렸던 일, 오늘 저녁은 내가 좋아하는 돈까스였던 일 기분 좋게 떠들고 있으면 너는 가끔씩 고개를 끄덕인다. 종이컵을 당겨 실을 팽팽히 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까 네 시선은 내게 닿지 않더라도 이 순간이..
To. 프완님 쵸로마츠 시점 선생님과 나 나와 선생님 나와 당신 #1 반장과 나 "선생님, 채점 다 했어요." 짜증을 가까스로 억누른 목소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경마 신문을 들추었다. 시험지 뭉치를 들고 서 있는 우리 반장은 불평불만을 얼굴로 다 말하고 있었다. 제 딴에는 참는 거겠지만 결국 다 얼굴에 드러나 버리는 점이 귀엽다. 나는 씩 웃으며 쵸로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 역시 빠르네. 수고했어, 반장." "앞으론 이런 거 시키지 좀 마세요. 채점은 선생님이 하셔야죠." "미안, 미안~ 양이 꽤 많다 보니 성적 확인 날까지 못 할 것 같아서~" 사실은 널 잡아두기 위한 핑계지만. 시험 전후에는 배려로 과제도, 행사도 없다 보니 이런 이유 아니면 교무실에 부를 거리도 없다. 나야 반장도 보고, 일도..
프완(@f_wan13)님의 연성을 보고 쓴 글입니다.프완님 연성은 이쪽! 오소쵸로_상대적 이유 집 안이 조용하다. 개미 한 마리의 발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그곳에서 너는 웅크리고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 나즈막한 저녁 노을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같은 집 안에 있는데도 이 문지방 하나로 나와 너의 세계가 끊어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차마 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차마 무슨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결국 너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있는 이곳엔 저녁노을조차 닿지 않는다. 담배 한 대가 간절했지만 네가 나를 알아챌까봐 억지로 참았다. 쵸로마츠, 감정이란 건 상대적이라고 생각해. 손으로 만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감각으로 어렴풋이 짐작하잖아...
전편 [오소쵸로]너만의 이야기 上 그럼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요. 나 네 이야기가 듣고 싶어! 이 대화는 두 사람만의 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쵸로마츠가 들고 다니던 크고 두꺼운 책은 어느 새인가 그저 소지품으로 전락해버렸다. 가족들의 이야기, 오빠와 동생들의 이야기, 어머니의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진 이야기, 돈을 벌기 위해 상인단에 들어간 이야기, 도적단의 습격을 받은 이야기, 겨우 도망쳐 나와 우연히 한 마을에서 꼬마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것을 계기로 이야기꾼이 된 이야기, 이야기꾼으로서 여행을 해온 이야기 등... 가상의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달리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는 쵸로마츠를 오소마츠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았다. 양피지에 쓰지 않은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오소마츠가 일을 하는 시간..
전편 선생님과 나 나와 선생님 기껏 병문안 간 것도 무색하게 오소마츠 선생님은 하루를 더 결석하셨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차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책상에 엎드려있었다. 머리도 복잡하고 그래서인지 영 기운이 없다. 선생님이 오셨으니 내가 대신 조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돌리며. 엎드려 있으니 누군가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자는 줄 알고 깨우는 걸까. 그런데 우리 반에 대뜸 내 머리에 손 올릴 정도로 친한 녀석이 있었던가? "우리 반장 어디 아픔?" 선생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튀었다. 계속 자는 척 했으면 좋을 텐데 망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느리게 몸을 켰다. 조심스럽게 선생님을 바라보니 선생님은 날 보고 씩 웃으셨다. "어제 밤에 뭐 했어? 혹시 혼자 딸딸─" "아니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