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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약 70억명이 사는 지구에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반하고 마음을 서로 나눌 확률. 계산은 안 해봤어도 두 사람이 만난다는 기본 전제부터 확률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다는 건 잘 알겠다. 그렇다면 저 문장에 '그 사랑은 여섯 쌍둥이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한정한다'는 조건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의미없는 숫자들을 노트에 수도 없이 휘갈겼었다. 현기증이 일어 책상에 엎어져도 도저히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숫자들의 나열에 그 사람의 이름이 파묻혀 사라져야만 했으니까.


누군가는 한창 좋을 때라고 말하는 고등학교 시절, 그때의 난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고 쓰라리게 사랑의 고통을 홀로 삼켜야했다.


"다녀왔습니다."


"여! 쵸로마츠, 한 잔 할래?"


막 신발을 벗으려는 쵸로마츠를 향해 오소마츠는 빈 맥주캔을 흔들었다. 아직 따지도 않은 맥주캔들, 거실로 가보니 탁자에는 마구잡이로 뜯어놓은 과자봉지, 그 중에는 먹다 만 제육덮밥도 있었다. 경마에서 크게 따고 혼자 술 파티 벌이는 거구만. 한순간에 상황을 파악한 쵸로마츠는 질린 표정으로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발에 빈 맥주캔이 치였다. 그걸 수락의 표시로 알아들은 오소마츠가 환히 웃었다.


"다른 애들은 다 들어가버렸다구! 너무하지 않아? 형아랑 놀아줘, 쬬로마쯔~"


"술 냄새! 달라붙지 마! 떨어져!"


쵸로마츠가 밀어내거나 말거나 오소마츠는 꿋꿋하게 쵸로마츠 손에 맥주캔을 쥐어주었다. 서늘한 맥주캔 표면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소마츠를 한 번, 엉망이 된 거실을 한 번, 제 손에 들린 맥주캔을 한 번 바라본 쵸로마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숨과 달리 맥주캔 따는 소리는 참으로 시원했다.


맥주캔 여러개가 달그락거리며 거실 바닥을 뒹군다. 그 틈 속에서 뒹굴고 있는 성인 남성 둘은 서로가 사람인지 맥주캔인지 구분조차 안 가는 듯했다. 습관적으로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선 구닥다리 코메디가 흘러나오고, 둘은 조건반사처럼 바보같이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과자 부스러기를 입 안에 털어넣고 맥주캔을 들어올리던 쵸로마츠가 문득 멈추었다. 맥주캔을 가볍게 빙글 흔들어도 들리는 소리나 느껴지는 무게따윈 없었다. 적당히 내려놓고 보이는 맥주캔을 집으려해도 텅 비었다는 것을 티 내듯이 손이 닿는 족족 쓰러지기만 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 쵸로마츠는 제 입맛만 다졌다. 과자의 짠맛밖에 안 남은 입 안은 텁텁하기만 했다.


"술 다 떨어졌네."


"머어~? 나는 아직 더 마실 쑤 이따!"


"발음 꼬여가는 주제에 무슨 소리야. 일어나. 얼른 치우고 자자."


"쵸로마츠, 쵸로마츠."


"왜 또."


"이게 뭐게~?"


오소마츠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탁자에서 무언갈 꺼냈다. 술기운에 눈 앞이 어질어질해 쵸로마츠는 인상을 쓰고 가만히 그것을 노려보았다. 오소마츠 손에는 작은 항아리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위쪽으로 갈 수록 색이 밝아지는 그 항아리는 오소마츠 얼굴만큼이나 빨간 리본으로 입구가 봉해져있었다. 매실장아찌는 아닐테고. 나른하게 눈을 깜박이던 쵸로마츠는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기억에 눈을 번쩍 떴다.


"앗! 그거 아빠가 친구분께 받아온 술이잖아!"


"빙고!"


"그거에 손 대다니 미쳤어?"


"술은 마시라고 있는 거잖아! 아빠처럼 애지중지 모셨다가는 못 먹게 된다고."


그리고 이거 맛 궁금하지 않음? 악마같은 속삭임에 쵸로마츠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솔직히 아직 부족했다. 둘이서 맥주 여러 캔을 해치우긴 했지만 오소마츠가 먼저 마시고 있었고, 일본주를 좋아하는 쵸로마츠에게 있어선 맥주는 어딘가 아쉬운 느낌을 주었다. 마셨다간 혼날 텐데... 그래도 마시고 싶다. 확실한 대답을 미루는 쵸로마츠를 두고 오소마츠는 기운차게 술병을 땄다. 알싸한 과일향이 쵸로마츠 코 끝을 간질였다. 자신도 모르게 목울대가 꿀렁였다. 술기운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머리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쉰 쵸로마츠는 백기 대신 잔을 들어올렸다.


"...난 한 잔만 마실테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낄낄 웃으며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잔을 채웠다. 투박해보이는 술병과 달리 술은 맑고 투명했다. 잔을 입가에 갖다대자 다시 한 번 시큰한 과일향이 쵸로마츠를 덮쳤다. 도수가 높다고 들었는데 향만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눈 딱 감고 술을 들이키니 술을 얕본 쵸로마츠를 비웃듯이 목구멍까지 홧홧한 기운이 감돌았다. 달콤하게만 느껴졌던 과일냄새가 지독하게 변해 구멍이란 구멍으로 퍼지는 것만 같았다. 이미 맥주로 가득 차있던 속에 독한 것이 들어가자 쉴새없이 요동쳤다. 술에 약한 쵸로마츠에게 있어선 귀한 술은 그저 귀한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토기에 쵸로마츠가 탁자 위에 엎드리자 오소마츠는 웃음을 연신 흘리며 부드럽게 쵸로마츠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좋아?"


명백하게 자신을 놀리는 말투에도 쵸로마츠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술때문에 속은 뜨겁고 시야가 일렁거렸다. 술기운에 지배 당한 머릿 속엔 오소마츠가 말한 '좋아'라는 단어만이 핑핑 돌았다. 답답하고 아리고 괴로운... 어쩐지 이런 감각이 오래 전에도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쵸로마츠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탁자의 턱을 괸 오소마츠가 느긋하게 쵸로마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쵸로마츠는 달뜬 숨을 진정시키며 눈을 꼭 감았다.


"있지, 오소마츠형. 그거 알아?"


"뭐? 너 술 약한 거?"


"나 옛날에 오소마츠형 좋아했었어."


쵸로마츠는 자신의 옛 마음을 토해냈다. 꽁꽁 숨기려 안달났던 마음은 뱉고 보니 의외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독한 술인 줄 알았던 그것은 이젠 맹물이 되어있었다.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지만 끝끝내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색색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의 가슴 얹저리에 있던 것이 사라지니 후련함과 함께 졸음이 찾아왔다. 이대로 천천히 수마에게 몸을 맡기고 싶었다.


"왜 과거형이야?"


갑자기 날아든 말에 눈이 번쩍 뜨였지만. 오소마츠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는듯이 웃었고, 화내는듯 슬퍼하고 있었다.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빛에 휩싸여 쵸로마츠는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쵸로마츠가 멍청하게 눈만 깜박이자 오소마츠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표정 웃긴다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쵸로마츠의 등을 세게 두드리기까지 했다.


"너 졸리면 위에 올라가서 자. 난 이거 마저 마시고 잘 테니까."


"어? 어, 응."


쵸로마츠가 비틀대며 일어나도 오소마츠는 잡아주지 않았다. 힘 빠진 다리로 겨우 겨우 문 앞까지 선 쵸로마츠는 문에 손을 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단 한 발자국만 나간다면 복도였다. 이대로 나간다면, 그런다면... 잠시 서있어도 어지럼증과 귀 울림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뒤를 돌아보았다. 완전히 문을 등진 오소마츠는 심야 예능을 보고 있었다. 눅눅해진 분위기에 맞지 않게 TV에서 여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오소마츠형."


"왜."


"...형은 항상 늦네."


"..."


"그게 형답긴 하지만."


잘 자. 쉰 목소리로 쵸로마츠는 그리 말하고 거실에서 사라졌다. 오소마츠가 뒤늦게 뒤를 돌아보아도 닫힌 문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참았던 숨을 내쉬며 오소마츠는 제 머리카락을 헝클어놓았다. 술병을 들어보아도 술 기운도, 술 맛도 어디론가 날아가버린 후였다. 신경질적으로 혀를 찬 오소마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주머니에 묵혀놓은 라이터가 틱틱거리며 불똥을 튀었다.


"그러는 넌 왜 항상 날 두고 가는 건데."


겨우 담배에 불이 붙고 오소마츠가 담배 연기를 길게 뱉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과일향이 감돌던 입 안은 쓰고 독한 담배 냄새밖에 남지 않았다.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지만 끝끝내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와선 안 되니까.



공백 미포함 2.886자


트친님이랑 대화하다 나온 썰?로 써보았습니다! 젠장, 오쵸 뽕을 채우시다니(부들)

해피엔딩러버라 맨날 포카포카한 것만 쓰다보니 이런 분위기는 처음 쓰는 것 같네요. 사랑이 서로 엇갈린 오소쵸로... 둘은 이어지지 않아요... 생각해보니 제가 쓴 글에서 처음 있는 배드엔딩같은데... 너무 행복한 것만 썼나. 그래도 괜찮아요. 어딘가의 오소쵸로는 둘이 꽁냥거리며 잘 지내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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