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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소마츠 X 학생 쵸로마츠




"선생님, 채점 다 했어요."


목구멍까지 솟구처오르는 욕지거리를 꾸역꾸역 삼켜내고 일부러 소리나게 시험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제서야 뒤집어 쓰고 있던 경마 신문을 치운 선생님은 날 보면 능청스레 웃으셨다.


"오~ 역시 빠르네. 수고했어, 반장."


"앞으론 이런 거 시키지 좀 마세요. 채점은 선생님이 하셔야죠."


"미안, 미안~ 양이 꽤 많다보니 성적 확인날까지 못 할 것 같아서~"


그놈의 경마랑 빠칭코만 안 하면 충분히 다 하고 남을 텐데요?! 얄궂은 얼굴에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채점이 끝난 시험지를 훑어보고 있었다. 내 신세, 어쩌다 이렇게까지 떨어진 거지. 한숨을 푹푹 내쉬어봐도 이미 빠져나간 공기처럼 지나간 일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백수처럼 경마 신문 들여다보기가 취미인 마츠노 오소마츠는 보기완 다르게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시다. 사립인 우리 학교에선 젊은 편에 속하고, 털털한 성격덕에 학생들 사이에선 남녀 가리지 않고 제법 인기가 많다. 내 눈에는 그냥 망할 선생이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지만. 기본적으로 방임주의에 모든 일을 설렁설렁 처리하는 선생님때문에 반장인 나만 고생이다. 전달해야할 학교 공지도, 걷어야할 유입물도, 반 분위기도 전부 반장인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께 뭐라 말씀드려도 '그대로여도 괜찮잖아~'하며 넘기시니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냥 이 정도였다면 그냥 귀찮은 일이 늘었다는 것정도로 끝났을 거다.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시험지 확인을 다 긑내셨는지 오소마츠 선생님은 두툼한 시험지더미를 서류 봉투 안에 집어넣으셨다.


"좋아! 그럼 이제 퇴근해볼까!"


오늘 하루도 힘들었다며 기지개를 펴는 선생님의 둥근 머리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뒤로 숨기고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선생님을 따라 교내를 빠져나갔다. 난 분명 동아리도 하지 않는데 그 일 이후론 오소마츠 선생님과 같이 나가게 되어 누구보다도 귀가가 늦어졌다. 하늘도 구름도 붉게 물들이는 태양을 보며 나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흘렸다. 붉은 색을 볼 때마다 그때의 후회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만다.


「쵸로마츠?」


주홍빛 노을이 아름다웠던 날, 학교 옥상에서 나와 선생님은 딱 마주쳤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을 땐 이미 내 손은 붉어져 있던 후였다. 아차. 손에 힘이 풀리자 나한테 잡혀있던 녀석은 맥없이 옥상 바닥에 널부러졌다. 눈물과 코피가 뒤샀여 얼굴에 들러붙고 교복은 거의 뜯어지다시피 한 녀석의 꼴은 내가 한 짓이지만 참 가관이었다. 뭐, 그때의 나는 그런 녀석따위 안중에 없었지만. 들켰어. 어떡하지? 뭐라 변명해야해? 변명이 통하기나 할까? 어쩌지? 도망가야 하나? 어차피 내일 또 볼 텐데? 아, 젠장. 이제야 똑 부러지게 살려고 했는데. 망했어. 개새끼때문에. 온갖 생각이 뇌 내에서 휘몰아쳤다. 정신을 차렸을 땐 오소마츠 선생님이 바로 곁으로 다가온 후였다.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검은 눈동자에 소름이 끼쳤다. 선생님은 나와 쓰러진 녀석을 번갈아 바라보시더니—


「이야~ 화려하게 저질렀네, 우리 반장.」


—웃으셨다. 아주 재미있는 걸 본 것처럼. 선생님은 내 어깨를 두어번 치더니 쓰러져있던 녀석을 가뿐히 없으셨다. 선생님의 붉은 저지는 아무 일도 없다는듯이 붉은 피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이고, 정신을 못 차리네. 생각보다 심각한데? 병원 데려가야하나.」


「......」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얄궂기 그지없다. 나에겐 선택지라고는 없다. 알고 있지만, 아니 알고 있기에 자존심이 더 꺾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나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못 본 척 해주세요...」


「응?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윽.. 못 본 척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에이, 본 걸 어떻게 못 본 걸로 해. 그럴 순 없지.」


아나 그럼 어쩌라는 거야.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 앞으로 얼굴을 쭉 내밀었다. 코 끝이 닿을락 말락해서 간지러웠다. 깊은 눈동자는 바로 앞에서 바라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내 그 눈이 반달처럼 곱게 휘었다.


「그래도 비밀로 해줄 순 있지.」


「엣.」


「우리 쵸로마츠군이 선생님 말만 잘 듣는다면?」


"하아..."


"쵸로마츠, 그렇게 한숨만 푹푹 내쉬면 행복이 다 달아나버린다고?"


제 행복은 이미 달아나버린지 오래입니다만. 뒷처리도 해주고, 약점까지 잡은 오소마츠 선생님은 그 이후부터 나를 미친듯이 부려먹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 점심 시간, 심지어 방과후까지! 본인이 해야할 업무를 나에게 은근슬쩍 미뤄도 나는 꾸역꾸역 참으며 할 수 밖에 없다. 오소마츠 선생님이 입을 벙긋하는 순간 내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크나큰 스크래치가 나고 말테니까. 내가 미쳤지! 그때 왜 성질을 못 죽여가지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해봐도 나아지는 것은 전혀 없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오소마츠 선생님이 무슨 말이라도 한 것인지 나한테 맞은 녀석도 목소리를 죽이고 얌전히 지내고 있다는 거다. 뭐어, 굳이 오소마츠 선생님이 아니였어도 내가 어떻게 했을 테지만.


"그보다 배고프지 않음? 저녁 먹지 않을래?"


"또요? 저는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요..."


"선생님, 외로움쟁이라구? 좁디 좁은 방 안에서 혼자 밥 먹기 싫다구? 아아, 누가 같이 밥 먹어줬으면 좋겠다! 입에 아무것도 안 들어가니 뭔가 말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네~"


"아!! 알겠어요, 알았다구요! 같이 먹으면 되는 거죠?!"


"정말이지? 우리 쵸로마츠 착하다, 착해."


헤실헤실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 선생님의 손에서 슬쩍 벗어났다. 말이 쓰다듬는 거지 헝클어트리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싫다. 내가 매일 아침 까치집 생긴 머리 가라앉히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오소마츠 선생님은 내게 어깨동무를 해오며 신나게 발을 옮기셨다. 그렇게 좋나. 오소마츠 선생님이 집에 가기 싫어하는 마음을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본인 말로는 형제들이 많아서 지금 혼자 지내는 게 쓸쓸해서 싫다지만 나는 형제들이랑 따로 살면 맘 편하고 좋을 것 같은데. 저지에서 미약하게 나는 땀냄새를 맡으며 멀거니 생각했다. 계속 이러다가 집에까지 부르는 거 아냐?


"그러고보니 우리 반장 진로희망서에 '유능한 회사원'이라고 적었던데."


"푸흡!"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거 너무 심하지 않음?"


"그그그그런 얘기를 보통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해요?! 그리고 초등학생이라니 그거 선생님한테만은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인데!"


"진정하고 일단 앉아."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날카롭게 째려보니 오소마츠 선생님은 태평하게 턱을 괴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앞에 있는 그릇은 어느새 비어있었다.


"아직 1학년이고 고민이 많은 건 알지만 말야. 자신만만하게 첫번째로 내놓고 유능한 회사원이라니."


"그게 뭐 어때서요. 현실적이고 평범하고 괜찮은 직업인데."


"너무 광활하잖아.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건데?"


"그건..."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어떤 분야?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난 그냥 졸업해서 좋은 대학교를 나와서 취직한 다음에 예쁜 아내와 귀여운 자식과 사는 소박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인데.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도 내가 잘 하는 게...


"있지, 쵸로마츠. 선생님 해볼 생각은 없어?"


"엥? 거기서 선생님이 왜 나와요?"


"너 반장하는 거 보니까 반 통솔도 잘 하고, 내 일 처리도 빨라서. 적성에 맞는 거 아냐?"


"그건 그냥 선생님이 안 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부루퉁하게 말하자 선생님은 그저 호탕하게 웃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웃음이지만 아까의 대화때문인지 뭔가 평소완 다르게 느껴졌다. 맨날 놀고 그래도 선생님이라고 날 걱정해주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낯 간지러워서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그래도 너 선생님 하면 진짜 잘 할 것 같단 말이지."


"...정말요?"


"네 성적 보면 영 아니지만."


"윽."


"그래도 우리 쵸로마츠 참 성실해. 자기 시험지를 그렇게 딱딱 채점할 줄은 몰랐어. 나라면 대충 동그라미 쳤을텐데."


"아, 진짜! 지금 놀리는 거예요, 뭐예요!"


"그래서 좋다고."


그 한 마디에 언성도, 화도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잠시 멈춰있는 동안 선생님이 일어나 가까이 다가오셨다. 손을 뻗어 내 뺨에 올리고... 어? 뭐야. 이거 무슨 상황? 끌려들어갈 것만 같이 깊은 눈동자를 본 순간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움직일 수가 없다. 결국 나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짠! 밥풀!"


"엥?"


상황에 맞지 않게 명랑한 목소리에 눈을 뜨자 검지 손가락에 하얀 밥풀을 묻힌 채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잠깐만. 그러면? 순식간에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황급히 한 팔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자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뭐야~? 쵸로마츠군 무슨 생각했어?"


"따, 딱히 아무것도...!"


"괜찮아~ 우리 성실한 반장씨도 사춘기 남자 아이잖아? 이런 저런 생각할 수도 있지~"


"저 그런 생각 안 했거든요!"


"그럼 무슨 생각?"


"그, 그게... 아, 몰라요! 다 먹었으니까 이만 갈 거예요! 잘 먹었습니다!"


"혼자 가게? 선생님이 바래다 줄게."


"다 컸으니까 필요없거든요! 그럼 이만!"


서둘러 가방을 챙겨들고 패밀리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뺨에 손을 갖다대자 열기때문에 홧홧했다. 창피함에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아서 더욱 속도를 높였다. 아, 내일 주말이라서 다행이다.


쵸로마츠가 씩씩대며 나간 뒤 오소마츠는 스르륵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머리카락에 살짝 가려진 귀는 불그스름하게 물들어있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오소마츠는 방금까지 쵸로마츠가 있던 곳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위험했다...."


조금 놀려줄 생각이긴 했지만 설마 거기에서 눈을 감아버릴 줄은... 거기다 얼굴 붉힌 채 잔뜩 부끄러워 하다니 반칙이잖아. 오소마츠는 아직도 제 검지 손가락에 붙어있는 하얀 밥풀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전혀 가망이 없어보였는데 이제야 틈이 보인다. 오소마츠는 밥풀을 입 안에 넣고 혀로 굴리며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둑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이 바삐 걸어가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렇게 밥을 사줬건만 쵸로마츠는 아직도 왜소해보이기만 했다.


"쵸로마츠, 언제 다 클래?"


다 커야 선생님이 안심하고 데려갈텐데.



공백 미포함 3,884자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잌ㅋㅋㅋㅋ 잘못했으면 두달 넘어서 올 뻔 했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인적인 일정도 있고, 연성욕이 떨어진 것도 있고 해서 이런 짧은 글로 돌아왓네요... 너만의 이야기 후편이 안 써져요...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 아 왜지? 왜 자꾸 막히지??? 그래서 즉흥으로 떠오르는 거 후다다닥 짧고 간단하게 써서 왔어요. 원래는 어제 안으로 써서 갖고 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만 컬링 보다가 늦었어요.. 아 여자컬링 최고ㅠㅠㅠㅠ 팀킴 사랑해요ㅠㅠㅠㅠ 여러분 여자 컬링 결승 일요일 9시 5분!!

다음에는 좀 더 제대로 된 글로 돌아올게요! 곧 개강 시즌이라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ㅠ 제 글 봐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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