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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오소마츠."


"우으..."


"야, 임마! 안 일어나냐, 쨔샤!"


"뭐야, 치비타~ 손님한테."


"손님은 얼어 죽을. 네 놈은 웬수야, 웬수! 취했으면 주정 떨지 말고 집에 가서 곱게 자라?"


"진짜 너무하네..."


바닥에 잔잔하게 남은 맥주병을 끌어안고 엎드러졌다. 어묵 냄새를 듬뿍 머금은 열기와 칙칙한 한숨이 내 머리를 덮는다. 일부러 모른 척을 하며 맥주병을 더 세게 안았다. 차갑고 딱딱하기만 하다. 물기 어린 표면을 타고 손가락이 미끄러진다. 힘없이 아래로 떨궈진 손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양쪽으로 텅 빈 자리를 보는 것이 싫어 고집스럽게 이마를 박고 일어나지 않았다. 헛웃음 비스름한 것이 들리더니 딱딱한 무언가가 내 머리를 가볍게 쳤다. 짜증 내며 고개를 드니 치비타가 국자를 들고 날 질린 듯이 보고 있었다.


"너 임마. 형제들이 집 나갔다고 우울한 건 알겠다만은 이러면 장남 꼴이 뭐가 되냐."


"뭐어가 장남이냐! 우리 다 동갑이거든?! 맥주나 더 줘!"


"아, 예예~ 너 돈은 충분한 거 맞냐?"


"잘 먹었다, 치비타!"


"어이! 까고 있네, 이 망할 놈아!!!"


역정을 흘려보내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다. 가로등 불빛이 쉴 새 없이 내 등 뒤로 사라져간다.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턱 끝까지 올라오고 나서야 차츰차츰 속도가 느려졌다. 느려지면 느려질수록 차가운 가을밤 공기가 옷 속에 스며든다. 팔을 쓸어내리며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어 고개를 들었다. 달빛이 지나칠 정도로 눈이 부셨다. 아, 진짜 싫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옷 소매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자 헛헛함만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래도 끝끝내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우욱..."


너무 마셔서인지, 마시고서 전력 질주를 해서인지 헛구역질이 자꾸만 목을 찌른다. 울렁거리는 배를 살살 쓸며 비틀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였다. 앞뒤 안 재고 달렸더니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사방을 둘러봐도 똑같이 생긴 가로등만 보일 뿐이다. 환한 빛에 벌레들이 푸드덕거리는 것을 보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술기운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머리는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몇 걸음 걷다 말고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니 거친 바닥이 아니라 매끈한 표면에 닿았다. 의아함에 고개를 빨간 통화 부스가 나를 반겼다. 

공중전화. 이거 아직도 있구나. 어릴 때 봤던 거보다는 세련된, 그러나 역시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공중전화를 보며 눈을 끔벅였다. 그다지 사람 손길을 타지 않았는지 은빛 표면이 가로등 불빛을 받고 반짝인다. 공중전화라... 조금 어색한 단어를 입에 담으며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치비타 어묵 값엔 턱없이 부족한 동전들이 나뒹굴었다. 이걸로 얼마나 통화할 수 있을까. 통화한다면 누구와 통화할까. 답지 않은 생각을 하다니 나도 단단히 취했나 보다. 그렇지만 몸을 솔직히 공중전화 앞에 섰다. 둔탁한 수화기가 제법 묵직하다. 느리게 집히는 동전 몇 개를 아무렇게나 넣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경쾌했다. 다이얼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마른 침을 삼켰다. 술기운때문에 머리는 핑핑 돌면서 왜 네 전화번호는 또렷이 떠오르는 것인지. 한 번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그 전화번호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눌렀다.

무기질적인 통화 연결음이 귀에 들어온다. 어쩐지 숨이 막혀 목 주변을 매만졌지만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전화 연결음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자나? 이 시간에 잘 녀석은 아닌데. 모르는 번호라서 안 받나? 받지 않길 바라면서도 막상 안 받으니 속이 바짝바짝 탄다. 별안간 지루했던 소리가 뚝 끊겼다.


"여보세요?"


그리웠던 목소리에 헛숨을 삼켰다. 쵸로마츠. 이름을 부르고 싶어도 목이 메서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의례적인 인사말에도 네가 얼마나 피곤한지가 녹아있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이 의아한지 쵸로마츠는 몇 번이고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그걸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나는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걸까? 소리 없는 질문엔 한숨만이 돌아왔다. 곧이어 전화가 끊겼음을 알리는 소리에도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네 목소리가 또 들릴 것만 같았다. 술기운은 이미 날아가 버렸지만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은 여전했다. 잘 지냈어? 일은 좀 어때? 밥은 챙겨 먹고 있어? 하지 못한 온갖 말들이 입속에서 뒹군다. 이럴 거면 대체 왜 전화한 거지. 머리를 쥐어뜯어도 떠오르는 답은 없다.


"으앗?!"


갑자기 터져 나온 벨 소리에 당황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분명 내 핸드폰인데 내 벨 소리가 낯설었다. 왜 이렇게 크게 설정해놓은 거야. 과거의 나를 탓하다 발신인을 보고 서 있던 그대로 굳어졌다. 쵸로마츠. 아무리 눈을 깜박여보아도 발신인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왜 쵸로마츠가 생전 안 하던 전화를. 답은 너무 명명백백했지만 일부러 밀어 넣었다. 도망가려는 나를 쫓아오듯이 벨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일부러 기다려봐도 끊을 생각을 안 한다. 하여간 누구 동생인지 끈질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잠겨버린 목소리를 풀려 헛기침을 몇 번 한 뒤에야 어렵사리 통화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여보세요."


제법 평범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한숨이 돌아왔다.


"오소마츠형 어디야?"


"어... 안 잤어?"


"됐고. 어디냐고. 밖이지?"


"뭐, 그렇지. 형아가 술 한 잔 좀 해서리~"


"어서 들어가서 자. 내일 또 늦게 일어나지 말고."


네가 내 엄마냐고 가볍게 말해줘야 하는데 할 수가 없었다. 물에 젖은 솜을 머금은 것처럼 목이 멨다. 분명 별거 아닌 대화인데 너무나도 각별했다. 너와의 대화가 무척이나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피곤함에 절은 목소리 속에서도 날 향한 메시지는 다정하기만 했다. 말이 나오지 않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네가 아까처럼 끊을까 봐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쵸로마츠."


스스로도 목소리가 갈라진 게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할까. 아까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지만 그 어떤 말도 성에 차지 않았다. 잠시 이어지는 침묵에도 쵸로마츠는 진득하게 왜 부르냐며 기다려주었다. 나 술 마셨으니까, 쵸로마츠도 나 취한 걸로 알 테니까 평소엔 하지 못했던 낯간지러운 말도 해도 되지 않을까? 고민하며 고개를 드니 부스 너머로 뜬 달이 처량하게 혼자 떠 있다.


"...잘 자."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데 보고 싶다고 하면 더 보고 싶어질까 봐 애써 그 말을 눌러 담았다. 바보 녀석. 차라리 울고 싶은데 헛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날 따라 웃을 셈이었는지 쵸로마츠 또한 허탈한 듯이 웃었다.


"응, 나도."


생뚱맞은 대답에 놀라 전화를 끊었다. 통화종료를 알리는 화면을 보다가 손에 힘이 풀려 핸드폰이 떨어졌다. 쿵 하고 큰 소리가 났다. 고장 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지만 다시 주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곧이어 몸 전체에 힘이 빠져 부스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유리창은 맥주병처럼 시리다. 혼자 멍하니 있다가 터져 나오는 실소에 두 눈을 꾹 눌러버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멈출 기세 없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바닥에 번져나가는 눈물 방울에 땅을 내려쳤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잘 자라는 것도, 보고 싶다는 것도 아닌 좋아한다는 말이었구나.


왜. 왜 어째서 지금에 와서야. 바닥을 내리친 주먹보다도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후회와 허망함이 전신을 찌르고, 아까 네 대답이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렇지만 너의 '나도'는 보고 싶다는 말뿐인 거지?



공백 미포함 2,767자


개강하고 진짜 글 못 쓸 것 같아서 짧게라도 써왔습니다. 그런데 큰일났어요 제가 글을 어케 써왔는지 기억이 안 나요.(심각) 이거 쓰면서도 나 글 어떻게 썼더라? 패닉 와서ㅠㅠㅠ 그래도 이건 짧은데 긴 글은 어케 쓰죠ㅠㅠ 엉엉ㅠㅠㅠ 학교님 방학과 제 감각 돌려주세요ㅠㅠㅠ

개강하고 우울해서 그런가 우울한 글이 나와버렸네요. 이게 다 학교가 나쁜겁니다(?) 제 안의 오소는 자각이 늦을 것 같은 아이라... 그냥 자각 늦게 하고 후회하는 오소가 보고 싶었어요. 전화 소재도 써보고 싶었고...

글은 비록 우울하지만 글 봐주시는 분들은 부디 행복하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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