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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키병 소재
※이 노래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KK - True
노래 소리가 들렸다. 나직하고 어설픈 멜로디가 가을 바람을 타고서. 아무도 없는 학교에 울린 노래는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신비로운 기분이 들었다. 미성에 이끌려 마츠노 오소마츠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을 때마다 소리에 선명히 색이 입혀진다. 하얀 색 교실문을 앞에 두고 오소마츠는 멈추어섰다. 당장 문을 열어 누가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노래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뒤섞였다. 가늘게 이어지던 노래가 끊어지고 나서야 오소마츠는 교실 문을 열었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가장 먼저 그를 반겼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앞머리를 치우자 붉은 노을을 등지고 선 학생이 한 명 보였다. 반에서 항상 보던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바람에 헝크러진 머리카락도,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도, 악보를 꼭 쥔 손도 낯설고 새롭게 보였다. 오소마츠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어... 안녕...?"
"어, 응... 안녕...?"
그게 마츠노 오소마츠와 마츠노 쵸로마츠의 첫 대화였다.
"음악 수행평가 연습?"
악보로 얼굴을 가린 채 쵸로마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처 가려지지 못 한 귀는 노을만큼이나 붉었다. 쵸로마츠는 틈 사이로 오소마츠를 흘끔흘끔 훔쳐보더니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마저 놓치지 않은 오소마츠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비웃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쵸로마츠는 인상을 쓰며 작게 양 볼을 부풀렸다.
"그건 그렇고 의외네? 보통 음악 수행평가는 별로 신경 안 쓰지 않음? 점수 반영도 거의 안 되고."
"그렇긴 하지만... 반 애들 앞에서 노래 해야하잖아. 창피 당하는 건 싫다고..."
"창피 당할 수준이 아니던데?"
가볍게 말했지만 오소마츠는 진심이었다. 노래가 좋지 않았다면 집에 가도 모자랄 시간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테니까. 악보를 살짝 치우고 정말이냐며 되묻는 쵸로마츠에게 오소마츠는 가까이 다가갔다. 놀라 뒤로 물러서는 쵸로마츠에게선 어렴풋하게 꽃향기가 났다.
"정말이고 말고! 그러니까 한 번 더 불러봐. 응?"
"지, 지금?"
"그럼 지금 부르지 언제 불러."
"창피하단 말이야...!"
"어차피 반 애들 앞에서 노래 부를 거잖아. 연습 삼아서 자, 하나 둘!"
오소마츠가 멋대로 팔을 휘저으며 지휘 흉내를 내자 쵸로마츠는 당황하다 입을 열었다. 반 박자 늦게 시작한 노래는 아까처럼 나직하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목소리가 차츰차츰 떨리기 시작하더니 중반부에 이르러선 가사 말고는 맞는 것이 없어졌다. 힘차게 시작했던 지휘도 점차 작아지고, 오소마츠는 팔을 내려놓은 채 멍하게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는 아까처럼 악보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젠 아예 목까지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쵸로마츠, 너 연습하긴 해야겠다...."
"시끄러워, 바보야."
너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오소마츠의 악의없는 말은 주먹으로 되돌아왔다.
텅 빈 교실에 잔잔하게 노래가 퍼진다. 덜덜 떨고 있는 목소리는 음을 찾아가려 해도 자꾸만 미끄러졌다. 후반부에는 평화로운 노래인데도 짜증이 묻어나왔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쵸로마츠를 바라보던 오소마츠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한숨 섞인 감탄을 토해냈다.
"너 진짜 노래 잘 부르는데 누가 보면 왜 그렇게까지 망가지는 거야."
"나도 아니까 조용히 해."
"결국 혼자 연습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거잖아."
할 말이 없는지 쵸로마츠는 입을 꾹 다물었다. ㅅ자로 반듯하게 닫힌 입을 보고 오소마츠는 반대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쵸로마츠 손에 있던 악보를 뺏어든 오소마츠는 음표를 한 번, 쵸로마츠를 한 번 바라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이윽고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노래가 교실을 채웠다. 힘 있는 목소리가 음 하나 하나에 정확하게 꽂힌다. 박자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따라 쵸로마츠는 눈동자를 움직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오소마츠는 눈을 반달처럼 접고는 소리를 낮춰 속삭이듯이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쵸로마츠에게만 들리라는 것처럼. 노래가 끝나고 교실에 적막이 내려앉자 쵸로마츠는 거칠게 악보를 뺏어들었다.
"중간에 가사 세 번 틀렸어."
"쩨쩨하게 그런 건 따지지 말라고! 아무튼 이렇게 그냥 가슴 펴고, 당당하게 부르면 되는 거야. 알겠어?"
"말은 쉽지... 넌 몰라, 내 마음."
"에엥? 모르긴 뭘 몰라?"
쵸로마츠는 고개를 홱 돌리고 샐쭉 입을 내밀었다. 흘끔 쳐다보는 눈빛엔 원망이 깃든 것도 같았다.
"넌 밴드부니까 큰 무대에서도 잘 노래하잖아."
"그거는... 어라? 나 밴드부인 거 알고 있었어?"
"내 귀는 장식인 줄 알아?"
"목소리는 장식같던데... 아! 아파! 말로 해, 말로!"
오소마츠가 잡아당겨져 빨개진 귀를 과장스럽게 문질렀다. 분한듯 몇번이고 씩씩거리던 쵸로마츠는 들고 있던 악보를 가방에 우겨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나무 바닥에 끌려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말이 너무 심했나? 오소마츠가 다급히 쵸로마츠의 소매를 붙잡자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한 번 흘겨보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있지, 넌 어떻게 그렇게 긴장을 안 해?"
"카리스마 레전드인 나도 긴장은 한다구? 그래도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해주니까 나도 신난다고 할까, 그런 사이에 긴장이 날아간다고 할까."
"난 그런 거 못 해. 무서워..."
여전히 오소마츠에게 소매를 잡힌 상태로 쵸로마츠는 몸을 돌렸다. 몸에 딱 맞는 교복을 걸친 그의 등이 너무나도 작아보였다. 얘 원래 이렇게 말랐던가? 상황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던 오소마츠는 눈동자를 한 번 데굴 굴리고는 옷 소매를 잡아당겼다. 반동으로 쵸로마츠가 휘청거리고,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럼 이런 건 어때?"
"뭐, 뭐가?"
"나랑 같이 노래 부른다고 생각하는 거!"
"...하?"
기가 차 헛숨만 토해내는 쵸로마츠가 떠날까 오소마츠는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너 혼자 노래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무섭다는 거잖아? 그럼 누가 같이 있으면 괜찮은 거지? 그치만 음악 수행평가 때 내가 같이 부를 수도 없는 거니까 같이 있다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거지! 그게 될 때까지 나랑 같이 노래 부르자!"
"뭐냐고, 그 기적의 논리는!"
"아, 일단 한 번 해봐! 밑져야 본전이잖아! 그리고 같이 부르면 음도 맞추기 쉬워질 거고!"
일단 앉아서 같이 노래 불러보자! 제 옆자리를 땅땅 두드리는 오소마츠에 쵸로마츠는 질린 표정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말을 해도 보내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구겨진 악보를 꺼내고 오소마츠를 쳐다보자 오소마츠는 만족스럽다는듯이 웃으며 코 밑을 비볐다. 하나, 둘!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갑자기 시작된 오소마츠의 지휘에 쵸로마츠는 또 다시 입을 열었다. 바르르 떨고 있는 목소리를 힘찬 목소리가 감싸안았고, 이내 서로 뒤섞이어 갔다. 그 주위에 미약한 꽃 향기가 멤돌았다.
방과 후, 정확히는 모든 부활동이 끝났을 시간. 아무도 없는 2-B 교실에서. 단 둘이. 같이 노래를. 고작 2주, 그것도 주말을 빼고 하루 딱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오소마츠도, 쵸로마츠도 빠지지 않고 서로의 곁에 있었다. 웃기도 하고, 가끔은 다투기도 한 그 시간은 덥다가도 차갑게 식어버리는 가을 날씨처럼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뭐해. 교실 안 가?"
말과 함께 머리에 떨어진 책 모서리에 오소마츠가 작게 악 소리를 냈다. 제법 아팠는지 정수리를 문지르면서도 오소마츠는 고개를 들더니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음악실 문 잠가야하니까 빨리 나가."
"아니, 아니 그거 말고!"
뒷목을 잡고 내칠 기세로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쵸로마츠에 오소마츠는 기겁하며 일어섰다. 쵸로마츠를 피해 음악실 정중앙까지 달려간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향해 선 후 기세 등등하게 허리에 손을 얹었다. 창문을 타고 따스한 햇살이 그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안 떨고 부른 거 다 내 덕분이잖?! 애들 표정 봤어? 봤냐구! 다들 놀라서 입을 헤 벌리고 완전 웃겼는데! 괜히 나까지 어깨가 으쓱해져가지고~"
"눈 감고 불러서 애들 표정 못 봤고, 그리고 노래 부른 건 나인데 왜 네가 뿌듯해하는 거야. 대답 다 했으니 됐지? 나가, 얼른."
"으앙~ 우리 쵸로쨩이 매정해~"
"누가 쵸로쨩이야, 쵸로쨩은! 나참."
난색을 표하며 쵸로마츠는 마스크를 올렸다. 요즘 일교차도 심하던데 감기라도 걸린걸까. 오소마츠는 그러거나 말거나 뒤에서 껴안듯이 쵸로마츠에게 들러붙었다. 몸에 힘을 풀고 징징거려도 쵸로마츠는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음악실 문을 닫으려 잠시 멈춘 틈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 목에 팔을 두른채 옆 얼굴을 몰래 훔쳐보았다. 원래도 마르긴 했지만 그 사이에 또 살이라도 빠진 것인지 턱선이 전보다 날카롭고 예리하게 변해있었다. 하얀 피부는 검은 마스크에 대조되어보였고, 눈은 작아도 속눈썹만큼은 길고 가늘었다. 마찬가지로 가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베베 꼬며 놀던 오소마츠는 무심한 척 말을 던졌다.
"있지, 쵸로쨩."
"그거 계속 하는 거냐고. 왜."
"나랑 밴드할 생각 없어? 더블 보컬로."
쵸로마츠의 어깨가 올라갔다. 일부러 들으라는듯이 크게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보지도 않고 한 손으로 밀어냈다.
"...난 교무실 들려야하니까 먼저 교실에나 가."
"응응. 알겠어! 생각해봐!"
애초에 단번에 대답을 줄 거란 기대는 안 했었다. 오소마츠는 일부러 밝게 말하고는 뒷걸음질로 교실로 향했다. 계단으로 꺾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쵸로마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마스크를 내리려 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꺾어지고 계단이 발 뒤꿈치에 닿고 나서야 오소마츠는 난간을 짚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오소마츠."
계단 위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오소마츠처럼 교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오소마츠를 기다리던 누군가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역광에 오소마츠는 인상을 구겼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어?"
그 말에 이번엔 오소마츠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생각해봐. 우리 좋았었잖아!"
오소마츠는 고개를 비틀며 뒷목을 긁적였다. 이별 통보 후 주말 내내 전화를 할 때부터 불안하다 싶었지만 설마 학교에서까지 질척거릴 줄은 몰랐다. 주변에 누가 없는지 대충 훑어보고서 오소마츠는 자신의 앞에 선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어깨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미들롱 머리는 고데기를 했는지 안쪽으로 말려있고, 쉴새없이 왱알거리는 입은 불그스름했다. 나름 티 안 나게 화장한 거겠지. 이별하고 정말 맘 고생하긴 했는지 의심이 가는 모습에 오소마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신이 여자친구라는 존재를 원했듯이, 이 아이 또한 남자친구라는 존재를 원했을 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적당히 귀엽고 가볍고, 게다가 저쪽에서 먼저 사귀자고 하니 오소마츠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랬기에 헤어지자고 할 때 고민할 필요도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짐작이 아예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깊게 생각하기는 싫었다. 오소마츠가 한결같이 무심한 표정을 짓자 여자아이는 제 눈가에 손을 갖다대었다. 이내 투명한 눈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럼 하다못해 마음 정리할 시간이라도 줘..."
"알겠어, 알겠어! 안아주면 되는 거지? 안아주면?"
다소 거칠게 끌어안고 오소마츠는 여자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서로가 이렇게 가깝게 맞닿고 있는데도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소마츠도, 여자아이도.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거잖아. 마음 정리는 커녕 무료한 확인 사살에 오소마츠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예의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길어진 하품에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혔을쯤, 오소마츠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건물 뒤로 초록색 실내화가 막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한 고등학생이나 되어도 실내화 뒤에 이름을 쓰는 것은 딱 한 명 뿐이었다.
"...쵸로마츠?"
"오, 오소마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오소마츠는 여자아이에게서 떨어지곤 곧바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건물 뒤로 들어서자마자 동그란 뒷통수가 보였다. 머리카락따윈 신경도 안 쓰는 건지 쵸로마츠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왜? 쵸로마츠가 도망치는 이유도, 자신이 이렇게 안달이 난 이유도 오소마츠로선 알 수 없었다. 단지 이대로 쵸로마츠를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그를 채찍질 하고 있었다.
"쵸로마츠, 잠깐만!"
어깨를 잡고 억지로 세우자 진한 꽃향기가 오소마츠를 덮쳤다. 언젠가 맡아본 적이 있는, 친근한 향이었다.
"꽃?"
"아, 으응. 화단에 예쁘게 피었길래..."
그걸로 화제를 돌리기라도 할 셈인지 쵸로마츠는 품에 앉은 꽃을 오소마츠에게 보여주었다. 검은 가쿠란에 색색깔의 꽃들이 만발하고 있었다. 분홍색, 노란색, 자주색, 흰색, 하늘색 그리고 빨간색. 빨간 꽃을 한 번 손가락으로 친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여 앞머리가 눈을 가리고, 검은 마스크가 얼굴을 대부분 가려버려서 무슨 표정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거 뽑아도 되는 거야?"
"응... 필요 없으니까."
가을이고, 곧 시들테니까. 시선을 피하며 무덤덤하게 말하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아는 쵸로마츠는 뽑더라도 소중히 꽃병에 꽂았으면 꽂았지 버릴 사람은 아니었다. 버리기에는 꽃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아깝다는 생각에 지긋이 바라보니 쵸로마츠는 꽃과 오소마츠를 번갈아 바라보고선 꽃 한 웅큼을 오소마츠에게 내밀었다. 온통 빨간 꽃뿐이었다.
"...이거 가질래?"
"어? 주는 거야?"
"응. 난 가지고 있어봤자니까. 네가 가져가주면 나야 좋지."
얼떨결에 꽃을 받아들자 쵸로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쵸로마츠는 웃고 있었다. 아파서 그런지 덧없고 희미한 미소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여자친구한테 꽃 선물 주면 좋아하잖아."
"여자친구? 아. 아까 걔는..."
"수업 시작하겠다. 빨리 가자."
뒷말은 칼같이 자르고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처음 잡아보는 쵸로마츠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힘을 주어 맞잡자 수업 예비종이 울렸다. 쵸로마츠의 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그 뒤를 오소마츠가 그저 조용히 따라갔다.
아. 깜박 잠들었다.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 오소마츠는 기지개를 쭉 폈다. 푹 자고 일어나 기분이 상쾌했다. 칠판 위에 있는 시계를 보니 이미 하교 시간은 한참 넘어간 뒤였다. 어떻게 아무도 안 깨워주냐고.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거리던 오소마츠는 가방을 챙기다 말고 다시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항상 쵸로마츠랑 노래하던 그 시간이네. 혹시나 싶어 오소마츠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쵸로마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음악 수행평가도 끝났고. 알고 있으면서도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다. 쵸로마츠랑 같이 밴드하면 진짜 좋을텐데. 둘이 한 무대에서 서서 같은 노래를 부르면. 땀을 흘리며 노래하는 쵸로마츠를 상상하며 오소마츠는 빙그레 웃었다. 잘 꼬셔봐야겠다. 가방을 어깨에 매고서 질리도록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노래 소리가 들렸다. 나직하고 애달픈 멜로디가 가을 바람을 타고서.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목소리는 익숙했다. 오소마츠는 무언가 생각하기도 전에 노래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빈 교실을 지나 복도의 끝, 음악실. 방음 시설도 없이 그저 구석에 두기만 한 낡은 음악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쵸로마츠의 것이었다. 잔잔한 노래는 쵸로마츠의 미성에 맞춰 만들어진 것처럼 잘 어울렸다. 오소마츠는 음악실 문에 손을 올려놓고 처음 그 날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이 노래를 끊고 싶지 않았다.음악 수행에 맞춰 음만 딱딱 부르던 노래와 달리 쵸로마츠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고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쵸로마츠는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었다. 잠시 노래가 끊긴 틈에 오소마츠가 음악실 문을 밀었다. 오래된 문은 의외로 큰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 순간 노래가 폭발했다. 열린 창문에 꽃향기가 스며든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분홍, 노랑, 자주, 하양, 하늘, 그리고 빨강, 빨강, 빨강... 아까 보았던 색색깔의 꽃들이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마치 꿈과 같은 공간 한 가운데에서 쵸로마츠는 울부짖고 있었다. 온갖 감정을 끌어다모으는 것처럼 가슴을 쥐어뜯으며. 쵸로마츠의 눈과 입에서 자꾸만 붉은 꽃잎이 흘러나왔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쵸로마츠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과 노래에 심장 박동을 타고 온 몸으로 전율이 퍼져나갔다. 조심스레 한 발자국 나아가니 인기척을 눈치챈 것인지 쵸로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울어서 붉어진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가슴 쥐어뜯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초록빛 눈동자로 오소마츠를 지그시 바라보던 쵸로마츠는 기어코 마지막 가사를 입에 담았다.
"이곳에 두고 갈게."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거센 바람이 몰아쳐들어왔다. 색색깔의 꽃잎이 날아올라 시야를 가리고, 진한 꽃향기에 숨이 막혔다. 반사적으로 팔로 얼굴을 가린 오소마츠는 불길한 느낌에 눈을 크게 떴다.
"쵸로마츠...?"
돌아오는 목소리따윈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저 오소마츠를 닮은 붉은 꽃들과 익숙한 꽃내음만이 남아있을뿐이었다.
공백 미포함 6,406자
젠장. 왜 갑자기 하나하키뽕이 차선...ㅠㅠㅠ 정말 뜬금없이 하나하키뽕이 차고, 또 트친님이랑 대화하다보니 약간 이미지가 구체적이 되어가지고 새벽 감성 끌어다가 글 썼네요. 원래는 1~2시면 자는데 지금 몇시지...? 4시 반??? 토요일이니까 괜찮아요(?)
KK의 True 들어주셨나요? 노래 좋죠...? 가사도 좋아요... 작중에서 쵸로가 마지막에 부른 노래가 저거... 후반에 감정 폭발하는 느낌이 너무너무 좋은데 가사 찾아보니까 정말 딱이더라구요ㅠㅠ 노래 들어주세요ㅠ 세 번 들어주세요ㅠㅠ 그리고 쵸로마츠가 뱉은 꽃은 제목에 나와있다시피 아네모네입니다. 처음에는 오소마츠처럼 새빨간 꽃을 하려고 했는데 아네모네 색이 딱 6가지더라구요? 그것도 초록색 대신 흰색인 거 빼면 딱 육둥이색... 무엇보다도 꽃말때문에 아네모네 고르게 되었습니다. 꽃말이 상당히 많던데 하나도 빼놓을 수 없어서... 근데 길어질 것 같으니까 아래에 접어놓을게요.
제가 진짜 왜 이렇게까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네요. 재미있는 내용이 아니긴 한데 어쨌든 엄... 애달픈 느낌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하루만에 쓴 거라 깊게 안 써서 애들 감정이 잘 전달이 되었을지 걱정이네요... 음 그치만 저는 여기까지인걸로.
새벽이지만 다들 좋은 꿈 꾸고 계시길 바랄게요. 제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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