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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생각인가, 오소마츠."
"으응? 뭐가?"
정말 무슨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오소마츠를 보고 카라마츠가 짧게 한숨을 흘렀다. 오랜 시간 그의 곁을 지켜왔지만 이렇게 태연하게 변덕을 부리는 것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카라마츠는 표정을 고칠 생각도 안 한 채 가볍게 던지듯 물었다.
"그 오카마를 데려온 것 말이다."
"아아, 쵸로미쨩? 엄청 예쁘지~ 아, 그렇다고 넘볼 생각은 마라? 내가 눈독 들인 애니깐."
"그러니까 나는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거다."
"헉, 카라마츠 너 진짜 넘볼 생각이었어? 사랑하는 동생과 싸우게 되다니 형아 너무 슬픈데."
장난기 가득한 말 속엔 가시가 박혀있고, 반달처럼 곱게 접힌 눈은 표독스럽다. 카라마츠는 갑자기 돌변한 오소마츠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만든 것인가. 그는 따져 묻는 것처럼 오소마츠가 보고 있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선 고양이처럼 몸을 말고 있는 이치마츠를 살살 쓰다듬고 있는 쵸로마츠가 있었다. 저렇게 풀어진 반장씨를 보는 건 처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오소마츠가 턱을 괴는 척 자연스럽게 모니터를 가렸다. 독점욕이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는듯했다. 카라마츠는 개의치 않고 그저 무심하게 질문만 던졌다.
"왜 저 오카마를 데려온 거지?"
"그야 내 마음에 들었으니까."
"고작 오카마 아닌가."
"고작 오카마?"
오소마츠가 웃음을 터트렸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카라마츠가 인상을 쓰거나 말거나 오소마츠는 신경도 쓰지 않고 눈물만 훔쳤다. 이내 부릅 떠진 두 눈은 광기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말 진심이야,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입을 열려고 했지만, 딱히 대답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는지 오소마츠가 계속 말을 이었다.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리가 일부러 늦장 부린 거. 좋게 말하면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 나쁘게 말하면 쵸로미쨩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 말이야."
"아아."
"그런데 쵸로미쨩은 살아있었어. 그냥 가만히 몸 사린 것도 아니야.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생각해봐. 너 부하의 보고도 듣고, 현장도 직접 봤지?"
카라마츠는 잠시 시선을 내리고 기억을 더듬었다. 카라마츠가 그곳에 도착한 건 오소마츠네가 도착하고 불과 1시간 후였다. 그때엔 이미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말끔하고 허무하게. 이젠 그냥 거대한 폐건물로 전락해버린 곳에서 부하들이 퍽 당황스러운 눈치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껏 가져온 무기들도 물리고, 카라마츠는 그 안을 쭉 살펴보았다. 오소마츠가 전투에 참가도 안 하고 떠났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적의 홈그라운드에서 오소마츠없이도 이렇게 빨리 전투가 끝났다는 사실 역시 놀라웠었다. 부하들의 실력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가. 핏자국을 따라 카라마츠는 유유히 걸었다. 그토록 전투를 기대하던 오소마츠가 떠난 것, 금세 끝나버린 전투, 당황하고 있는 부하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오카마의 시체. 여러 요인이 뒤섞여 뭔가가 석연치 않았다. 생각과 발걸음의 끝에 놓여있던 것은 굽이 나간 구두 한 짝이 나뒹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것을 주워들고 구두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산산조각으로 깨진 창문 너머로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회상을 마치고 카라마츠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딱 마주쳤다. 오소마츠의 눈엔 열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양 볼까지 붉혀가며 열변을 토했다.
"그래, 싸웠어. 싸운 거라고, 쵸로미쨩은! 마피아의 아지트에서 오카마 차림으로 무기를 뺏어서 상대를 죽여가면서 살아남은 거라고! 믿겨져? 우리조차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간 곳이야. 그런 곳에서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그 정도로 싸우고, 그러면서 내 앞에선 하나도 주눅 들지 않았어! 정말 최고야! 그때 그 눈을 너도 봤어야 하는 건데! 아니다. 그걸 나만 봐서 다행이지."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형이 이렇게 흥분하는 걸 보는 게 얼마 만이지? 오소마츠가 싸움 이외의 것에 이러는 것은 처음인지도 모른다. 오소마츠를 이토록 빠져들게 한 이가 반장씨의 형이라... 미묘한 기분에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쩔 셈이지?"
"어쩌긴 뭘 어째. 그야..."
오소마츠가 문득 모니터를 보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는 방실방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게를 잃은 의자가 삐그덕거리며 헛돌았다.
"원하는 건 가져야지."
카라마츠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서 오소마츠는 방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카라마츠는 조용히 그가 보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고양이 같은 이치마츠와 대자로 뻗어있는 쥬시마츠만이 침대 위에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카라마츠는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아아. 그래야지."
"쵸로마츠, 좋은 아침!"
"......퍽이나 좋은 아침이다."
"어? 혹시 숙취 때문에 기분 안 좋은 거야? 쵸로마츠 의외로 술 약하구나~"
"아니, 그것도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끌려왔는데 기분 좋을 리가 있겠냐!"
"침대에서 이렇게 푹 잔 게 얼마 만이지."
"아침밥 먹을 시간임까?"
"너희는 뭐라고 한마디 좀 해라!"
동생들과 있어서인지 평소 묘하게 날이 선 분위기가 사라진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큭큭 웃었다. 가까이하면 가까이할 수록, 알면 알수록 쵸로마츠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매혹적인 오카마에서부터 살기 위해서라면 눈 깜박이지 않고 상대를 죽이는 살인자, 동생들에게 무르면서 엄한 형까지.
"뭐, 아침부터 그렇게 화내지 말라구~"
"대체 무슨 생각이야."
자연스럽게 어깨에 팔을 두르는 오소마츠를 냉정히 밀어내며 쵸로마츠가 그를 째려봤다. 익숙해진 건지 신경 쓰지 않는 건지 오소마츠는 그저 웃었다. 쵸로마츠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뭐, 아무 생각 없이 이런 건 아니니까 안심하라구!"
"무슨 생각이 있다는 게 더 불안해."
"너무해, 쵸로쨩~ 그보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아, 카라마츠씨."
"톳티도 있다!"
뭐야, 그 호칭은. 쵸로마츠는 츳코미 할 타이밍도 놓치고 입을 벌린 채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어째서인지 장미꽃다발을 품고 있는 카라마츠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토도마츠 사이에 있는 사람은 쵸로마츠도 아는 얼굴이었다.
"Good mornig이다, 반장씨! 내가 반장씨를 닮은─"
"이야, 이야미 오랜만~"
"갑자기 아침부터 사람을 데려오고 이게 뭐하는 짓이잔스!"
"별 건 아니고 너한테 볼 일이 생겨서."
오소마츠는 태연히 말하며 흘낏 쵸로마츠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굳은 얼굴로 동생들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팔로 두 동생을 감싸고 있었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오소마츠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말을 이었다.
"너 말이야. 요즘 일은 좀 어때?"
"무슨 말을 하는 거잔스? 그런 쓸데없는 안부나 물으려고 부른 건 아닐 테고... 그냥 빨린 본론이나 말하잔스!"
Me는 바쁜 몸이란 잔스! 노골적으로 불쾌한 티를 팍팍 내는 이야미를 보고 오소마츠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들에 오소마츠가 어깨를 으쓱였다.
"에잉, 친구 사이에 섭섭하긴. 별건 아니고 너 일 하는 것 중에 돈 받는 것도 있잖아."
"흥. 무슨 사채업자같이 말하지 말란잔스. Me는 어엿히 Me의 돈을 받는 거란 말이잔스. 본인 돈을 본인이 걸어놓고 도망치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잔스."
쵸로마츠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이치마츠도 자연스럽게 얼굴이 구겨지고, 쥬시마츠는 드물게 입을 닫고 손으로 가렸다. 돈을 걸고 도망치는 녀석. 그 세 명은 그런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자신들의 부모니까. 쵸로마츠는 이야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살폈다. 틀림없다. 자신의 부모가 들락날락했던 카지노의 주인이다. 어린 시절 카지노 앞을 서성거리며 보았던 저 얼굴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헤에~ 너도 고생이 많네. 근데 그렇게 많으면 다 기억 못 하겠네?"
"당연한 거 아니잔스? 그런 일은 내가 할 필요가 없잔스. 부하들에게 맡기면 그만인 것을."
"그래? 그럼 얘네도?"
아까 일은 잊었는지 오소마츠가 태연히 또 쵸로마츠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까와 다르게 쵸로마츠가 그를 밀어내진 않았지만. 오소마츠에게만 향해있던 이야미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 두 동생이 자신의 뒤로 숨자 쵸로마츠는 오히려 더욱 눈초리를 사납게 했다. 무덤덤하게 마치 상품을 품평하듯이 그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이야미는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흥, 전혀 모르는 얼굴들잔스. Me에게 빚이라도 있는 자들을 잡아주기라도 한 거잔스?"
"뭐, 어찌보면 그런 거지? 있지, 이야미~ 우리 친구 맞지?"
갑자기 능글맞게 웃기 시작한 오소마츠를 보며 이야미가 인상을 썼다. 경험상 이럴 경우는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가, 갑자기 뭐잔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응? 얘네 빚 좀 청산해─"
"말이 되는 소릴 하란 잔스!!! 우리가 뭐 기부하고 사는 줄로 아는 거잔스?! 그리고 애초에 Me는 당신네 같은 친구 둔 기억 없잔스!!!"
"쳇, 매정하게 굴긴 알았어~ 알았어~"
그때 오소마츠 옆구리에 미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쵸로마츠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따져 묻듯이 오소마츠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씩 웃으며 쵸로마츠 머리를 헤집은 오소마츠가 반대쪽 속을 들어 올렸다. 대기하고 있던 부하가 검고 큰 서류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오소마츠는 부하를 보지도 않고 그것을 받아들고 천천히 이야미에게로 다가갔다. 꺼림칙한 기분에 이야미가 두 발짝 뒤로 물러났지만 오소마츠는 그저 웃기만 했다.
"기부하고 사는 게 아닌 녀석이 정말로 빚진 사람을 모를 리가 없잖? 명단, 가지고 있지?"
줘봐. 맡겨놓기라도 한 것처럼 오소마츠는 손을 내밀었다.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 지 잘 모르겠잔스.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잔스?"
"이런 거지."
오소마츠는 간단한 손짓 몇 번으로 가방을 열고 이야미 머리 위에서 뒤집었다. 그러자 폭포수처럼 수많은 지폐 다발이 쏟아져나왔다.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당사자인 오소마츠와 모든 걸 알고 있던 카라마츠와 토도마츠만이 조용했다. 지폐 몇 장이 벚꽃잎처럼 허공을 떠돌아다니다 바닥에 안착하고 나서야 이야미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쉐에~?!"
"마츠노 쵸로마츠, 마츠노 이치마츠, 마츠노 쥬시마츠. 이 세 명이 가진 빚, 이자까지 포함해서 이걸로 전부 갚은 거다?"
"이게 지금 뭐, 뭐하는...!"
"뭣하면 같이 세줄 수도 있다고? 무료하고 오래 걸리니 하고 싶진 않지만."
"꼭 이런 식으로 줘야했잔스?! 성격 참 나쁘잔스!"
"하핫, 그야 마피아니까. 그리고 이러는 편이 더 폼나잖아?"
그치? 오소마츠가 동의를 구하기도 전에 그 상대가 먼저 움직였다. 넥타이가 목을 조르고 상쾌한 향이 숨을 막히게 했다. 주변에서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자 오소마츠는 왼손을 들어 멈추란 지시를 내리고선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쵸로마츠의 검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 속에 휘몰아치는 열기에 도리어 소름이 돋았다. 어제와는 달리 격정적인 눈빛. 그건 필히 분노였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멱살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래 봤자 아프지도 않았지만. 오소마츠는 기쁘게 웃었다. 쵸로미일 때는 고혹적으로, 싸울 때는 냉철한 킬러로, 동생들과 있을 때는 상냥한 형으로, 그리고 지금은 화내는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게 순수히 기뻤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쵸로마츠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 하나하나를 전부 알고 싶었다. 더 나아가서 자신에게만 보이는 모습을 갖고 싶었다.
"쵸로마츠형 진정해."
"쵸로마츠 형아 지금 표정 엄청나다께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빚쟁이도 그런데 마피아가 기부하고 살겠냐고!"
"Me는 빚쟁이가 아니란 잔스!"
"이자식! 대체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뭐야!!"
"우리 패밀리에 들어오는 거."
...하?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헛숨이 튀어나오고 쵸로마츠의 힘이 살짝 풀렸다. 표정이 바뀌지 않은 건 카라마츠와 토도마츠뿐이었다. 주변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뒤로 물러서려는 그의 손을 오소마츠가 붙들고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맞추었다. 미약하게 흔들리는 그 작은 눈동자에 자신만이 담기는 것이 좋았다.
"숙식 제공에 빚은 이자 없이 원금만 갚는 식으로 월급의 50%가 자동으로 빚 갚는 데에 쓰이고 나머지 50%는 그대로 네게 돌려줄 거야. 빚을 다 갚고 나면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도 돼. 이 정도면 꽤 좋은 조건 아냐?"
"...진심이야?"
"응. 진심."
열기에 짓눌릴 것 같아 쵸로마츠가 한 발자국 뒤로 뻗는다. 그러나 우습게도 오소마츠는 더욱 거리를 좁혀왔다.
"어차피 빚을 다 갚아도 돌려보낼 생각 없을 거 아냐? 현실적으로 이미 정보가 팔려서 불가능하기도 하고."
"푸핫, 쵸로마츠 너 어제까지만 해도 돌려보내 달라고 하다니 그거 자각하고 있었구나?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 동생 꽤 굉장하다고?"
"그야 쓰레기 형들보다는 내가 유능하지."
"으음~? 브라더?"
풀어진 분위기를 틈타 쵸로마츠가 또다시 뒤로 물러나려 하자 오소마츠가 강하게 그 손을 붙들었다. 피가 몰려 손가락 끝이 붉게 변했다. 손이 다 저려왔다. 기분 나쁜 것을 감추지 않고 쵸로마츠가 와작 얼굴을 구겼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응? 왜 그러긴. 같이 일하고 싶으니까."
"겨우 그런 거 때문에 우리 빚을 다 갚아주고, 우리에게만 유리한 조건을 내건다고? 누굴 바보로 알아?!"
"에엥? 진짜 몰라? 쵸로마츠 의외로 둔하네?"
"뭐, 이 자식─"
돌연 쵸로마츠가 말을 끊었다. 말이 끊겼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쵸로마츠도, 다른 이들까지도 일언반구 하지 못하고, 그 넓은 공간에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태연하게 웃고 있는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부드럽게 쵸로마츠의 손을 잡고, 그의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오소마츠만이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보스가 일개 오카마에게 무릎을 꿇었다며 술렁거리는 소리도, 둘에게 날아드는 시선도 두 사람에겐 닿지 않았다. 서로에게 전해지는 온기와 얽혀가는 시선만이 전부. 오소마츠가 엄지손가락으로 느릿하게 쵸로마츠의 손등을 쓸었다. 이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그래도 피부 아래로 느껴지는 단단한 골격이 그의 고집과 똑 닮아있었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유야 하나뿐이잖아."
오소마츠가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경악 따위 흘려보내고 오소마츠는 제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쵸로마츠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네 전부를 원해."
"뭐─"
"그렇지만 네가 안 판다고 했고, 나도 네 몸을 살 생각은 없어. 받아낼 거야. 네 몸도, 마음도 전부."
그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쵸로마츠가 헛숨을 삼켰다. 짐승과도 같이 먹이를 노리는 듯한 눈빛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등에 키스를 받은 게 아니라 손등이 물어뜯긴 것처럼 입술이 닿았던 부분이 화끈거렸다. 쵸로마츠는 조용히 마른 침을 삼켰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지만 이 손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쵸로마츠가 살짝 힘을 주어 오소마츠의 손을 잡자 오소마츠가 그에 응답하듯 부드럽게 그의 손을 감싸쥐었다.
"나랑 내기하자, 쵸로마츠. 너희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네가 날 사랑할지 안 할지. 내가 이기면 너를 나에게 줘."
"...내가 이기면?"
"너희 형제가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줄게. 어때?"
숨을 짧게 들이마시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심하라는 의미로 살짝 웃어 보이니 그 둘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어렸을 때부터 착해빠진 이 동생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주변을 쭉 살펴보니 부하들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쵸로마츠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경악하고 있는 이도 있고, 노려보고 있는 이도 있으며, 어느새 진정했는지 담담한 이들도 있었다. 단 하나 공통점이라 할 것은 모두 쵸로마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내기를 제안해오다니. 쵸로마츠는 한숨 섞인 헛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누가 마피아 아니랄까봐 성격 나쁘네. 쵸로마츠는 체념하며 정면을 봤다.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유이하게 평온해보였다. 그 두사람을 보자 들썽거렸던 마음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쵸로마츠."
대답을 보채는 손길에 쵸로마츠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으로 만났을 때도, 적의 아지트에서 만났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참을성이 없는 남자다. 어쩐지 짜증이 나 쵸로마츠는 손톱을 세워 그의 손등을 아플 정도로 지긋이 누르며 그를 일으켰다. 눈 앞에 선 오소마츠가 두 눈을 깜박이자 쵸로마츠가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웃기네. 어차피 나한테 선택권은 없잖아?"
잠시 말을 끊고 쵸로마츠는 숨을 들이마셨다.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울 수 없다. 선택권이 없다고 해도 역시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은 꺼려졌다. 그렇지만 하는 수 밖에 없잖아.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열기와 열기가 맞부딪혀 스파크가 튀는데도 불구하고 둘 중 아무도 시선을 피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좋아.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보스."
"하핫, 정말 믿음직한 부하가 생겼는걸? 잘 부탁해."
"오소마츠형, 이거 저번에 처리한 일 보고서인데─ 또 자리에 없네."
점심 먹고서 그대로 도망간 거겠지. 토도마츠는 텅 빈 보스 집무실이 이젠 익숙한지 태연하게 걸어가 책상 위에 종이 뭉치를 올려놓았다. 서류 정리하느라 굳은 몸을 기지개로 한 번 풀어주고 책상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손목시계의 바늘이 1시 3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들려오는 말다툼 소리에 토도마츠가 문쪽을 바라보았다.
"여~ 오늘도 수고 많아, 쵸로마츠형."
"어? 토도마츠 있었어?"
"토도마츠! 나는?!"
"오소마츠형은 오늘도 일 안 하고 도망갔잖아."
토도마츠는 질린 눈으로 그새 쌓인 서류를 툭툭 건들였다. 종이의 산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오소마츠는 기겁을 하며 다시금 도망가려했지만 쵸로마츠가 그의 붉은 넥타이를 잡아 끌었다
"어딜 가! 저거 다 처리하기 전까진 여기서 못 나갈 줄 알아!"
"아아악! 쵸로마츠 너무해! 오니!"
"꺄~ 쵸로마츠형 멋있어~"
"너 내 쵸로마츠 탐내지마라?"
"내 이름 앞에 '내' 붙이지마! 그리고 토도마츠 넌 이 망할 보스 나한테 떠넘기고 해맑게 칭찬하지마!"
"그치만~ 난 할 게 너무 많은걸? 그리고 오소마츠형 일은 쵸로마츠형이 전문이잖아?"
쵸로마츠는 부정하는 말 한 마디 없이 그저 인상을 썼다. 그 반응에 토도마츠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럼 난 다른 일을 하러 이만~"
"또 그 젊은 사장이랑 데이트하러 가는 거 아니냐?"
"데이트 아니거든! 그리고 난 여자애랑 데이트하는 게 더 좋아!"
"결국 그 사람 만나러 가는 거 맞잖아."
"정보를 얻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 아, 몰라! 진짜 간다!"
"토도마츠 수고가 많네."
"뭘 자연스럽게 같이 가려는 거야, 망할 보스."
켁. 자비 없이 넥타이를 잡아끄는 통에 오소마츠는 속수무책으로 다시 집무실에 돌아왔다. 좋아하는 이와 함께 있는 건 좋지만 일을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싫었다. 자리에 앉아 입술을 삐죽 내밀고 쵸로마츠를 올려다보자 차디찬 반응만이 돌아왔다. 쵸로마츠으... 책상 위에 엎어지며 일하기 싫다고 떼를 써봐도 있는 일이 없어질 리가 만무했다.미뤄봤자 늘어날 뿐이란 걸 알지만 도저히 펜을 들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에는 나가줘야 지구한테 예의인 거 아님? 옆에 있는 쵸로마츠때문에 차마 대놓고 말은 못하고 꿍얼거리고 있자 쵸로마츠가 머리 위에서 한숨을 쉬는 게 들렸다.
"오소마츠형."
쵸로마츠가 허리를 숙여 오소마츠에게 다가왔다. 아차 또 일 안 하고 시끄럽게 군다고 한 대 때리려는 건가. 오소마츠가 질끈 눈을 감을 무렵 쵸로마츠는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갖다대었다.
"다 끝나면 오늘 밤은 세라복이니까."
달콤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속삭이고선 쵸로마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오소마츠 홀로 남은 집무실에 정적이 내려앉고 몇 초 후, 오소마츠가 책상을 내리치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반동으로 서류 몇 장이 팔락거리며 떨어졌다. 오소마츠는 뒤늦게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 사이 조그마해진 쵸로마츠의 둥근 뒷통수에 대고 오소마츠는 소리쳤다.
"금방 끝낼 테니까 기다려! 내 애인 최고!!! 사랑해!!!!!"
쩌렁쩌렁 울려대는 말을 뒤로 한 채 쵸로마츠는 길고 긴 복도를 걸어갔다. 그의 귀가 조금 붉게 물들어있었다.
공백 미포함 7,759자
안녕하세요, 라나애입니다! 오랜만이네요. 다들 잘 지내셨나요?
그렇다면 저를 매우 치십시오(석고대죄) 한 달 안 넘긴다고 해놓고서 넘겼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죄송해요ㅠㅠㅠㅠ 라나애 우주쓰레기 어허엉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이 결말이 마음에 드실 지 잘 모르겠어요ㅠㅠㅠ 사실 써보고 싶은 건 이것저것 있었는데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빼고 고치다보니ㅠㅠㅠ
죄송합니다. 글러 먹은 글러라서 정말 죄송합니다(머리박)
그래도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기말 끝나고 종강나면... 천천히 써올게요! 이젠 단편 쓸테야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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