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쵸로마츠는 넓디넓은 침대에 널브러진 동생들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쥬시마츠는 배를 드러내고서 색색 숨을 쉬고 있고, 이치마츠는 운 탓에 눈가가 새빨갰다. 이렇게 셋이 모인 게 얼마 만이더라. 쵸로마츠가 설핏 웃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눈앞이 깜깜하다. 단순히 불을 꺼서가 아니라 이제 뭘 해야 할 지를 모르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마피아에게 납치당한 후에 아는 마피아 아지트에 오다니 상황이 나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납치당했을 때는 그저 살아남겠다는 일심(一心)으로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희망 같지도 않은 희망인 Pino 패밀리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모든 관심이 Pino 패밀리에 등 뒤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터지고 건물이 흔들렸을 때는 저도 모르게 웃기까지 했다. 죽기 살기로 뛰어내렸건만 착륙한 곳이 딱 그 보기 싫었던 오소마츠 앞이라니. 그래도 상관없었다. 분명 오소마츠가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예상을 비웃듯 오소마츠는 뭐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을 데려왔다. 거기다 동생들도 이곳에 있었다. 쵸로마츠는 답지 않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동생들도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깊은 한숨이 입술 사이로 빠져나온다.

쵸로마츠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캠퍼스 같은 창틀엔 남청빛 하늘에 새하얀 별들이 수놓아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져있었다. 시원한 밤공기가 흘러들어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산책이나 할까. 마피아 아지트라는 걸 잊은 것인지 쵸로마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작은 소리를 내며 매트리스가 출렁였건만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깨지 않고 곤히 잘 뿐이었다. 쵸로마츠는 조용한 문을 조금만 열고 살짝 빠져나왔다. 복도는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다. 눈이 어둠에 적응될 때까지 잠시 기다린 후 쵸로마츠는 벽을 짚으며 무작정 걸었다. 딱히 어디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디든지 간에 그저 걷고 싶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잠이 안 와?"


명백히 자신을 향한 말에 쵸로마츠는 한숨을 내쉬며 입고 있던 가운을 여몄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오소마츠가 벽에 기댄 채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잠이 안 오나 보지?"


"쵸로미쨩이 한 지붕 아래에 있는데 잠이 올 리가~"


"한 지붕이 너무 크지 않나?"


쵸로마츠는 아지트를 쭉 훑어보았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밝을 때도 이 아지트는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야 카리스마 레전드 보스를 둔 패밀리니까! 그래도 방이 가깝잖?"


"외부인을 그렇게 막 가까운 곳에 들여도 되는 겁니까, 보스씨?"


팔짱을 끼고 비아냥거리는 쵸로마츠를 보고 오소마츠는 그저 웃었다. 오소마츠가 큰 보폭으로 단숨에 쵸로마츠 앞에 서더니 그의 손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


"같이 술 한잔하지 않을래, 쵸로미쨩?"


"짜잔~! 여기 어때? 대단하지!"


눈을 가린 손이 사라지고 곧장 쏟아져 내려 오는 빛줄기에 쵸로마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둠에 적응되었다 싶더니 이번엔 빛이다. 조금씩 앞이 보이기 시작하나 싶더니만 이내 말끔한 바(bar)가 나타났다. 가게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인테리어에 쵸로마츠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왜 아지트에 바가 있는 거야."


"일도 일이지만 휴식은 더 중요하다고?"


"너 맨날 밖으로 나돌아다니잖아."


"그야 밖이 더 재미있으니까!!"


코 밑을 문지르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렇게 썩힐 인테리어라면 차라리 자신에게 주었으면 싶을 정도로 말끔하고 갖출 것이 다 갖춰져 있었다. 쵸로마츠는 바 안쪽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재료와 도구,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일부뿐이지만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는 걸 봐선 누군가가 가끔씩 오긴 하는 모양이었다.


"여긴 우리 형제들만 쓰는 장소라구? 어때, 영광이지? 없는 거 빼고 다 있으니까 먹고 싶은 거 얼마든지 꺼내 마셔도 돼! 뭣하면 내가 한 잔 따라줄까?"


"아니, 됐어. 내가 직접 해 마실게."


엥? 폼 잡으며 아무 술병이나 집어 들었던 오소마츠를 내버려 두고 쵸로는 능숙하게 재료와 도구를 꺼내 바 위에 늘어놓았다. 말똥말똥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챈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보지도 않은 채 툭 뱉었다.


"네 것도 만들어줘?"


"어? 어, 어!! 만들어줘!!"


혹여나 마음이 바뀔까봐 오소마츠가 냉큼 대답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평가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새로운 재료들을 꺼냈다. 바 한쪽에 재료가 두 줄로 나란히 섰다. 오소마츠는 가게에 있는 것처럼 바에서 나와 테이블 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쵸로마츠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칵테일 글라스 두 잔을 꺼냈다. 잔끼리 부딪혀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렸다. 바 위에 나란히 놓고 얼음을 가득 채운 후 바 스푼으로 얼음을 살짝 굴렸다. 얼음끼리 맞부딪히는 소리 없이 조용하고 깔끔했다. 잔을 차갑게 식히는 칠링(Chilling)작업을 보며 오소마츠는 그냥 얼음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만 짐작했다.


"뭐 만드는 거야, 쵸로미쨩?"


"글쎄. 맞춰봐."


"에이, 힌트 좀 주라."


"이게 내 거, 이게 네 거."


힌트 맞는지 의심스러운 말을 하며 쵸로마츠가 바 스푼으로 가볍게 쉐이커와 믹싱 글라스를 두드렸다. 두 가지나 만드는 구나. 결론은 몹시 단순했다. 오소마츠는 턱을 괴고 대답 없이 조용해진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딱히 맞출 생각은 없다. 칵테일 이름도 잘 모를 뿐더러 그런 거 생각할 와중에 쵸로마츠의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 망설임없이 재료를 꺼내올 때부터 느낀 거지만 동작 하나 하나가 아주 능숙했다. 술을 따르는 게 각을 잰듯 정확했고, 쉐이커는 쥬시마츠와 달리 손목 스냅만을 사용해 간단해보이면서도 강하게 흔들었다. 투명한 스터 스틱으로 칵테일을 저을 때에도 불필요한 동작은 없었다. 정해진 대로 딱딱 떨어지는 행동들에 오소마츠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결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쵸로마츠는 잔에 채운 얼음을 미련없이 버리고 칵테일을 따르기 시작했다. 쉐이커쪽에선 은은한 초록빛을 띤 칵테일이, 믹싱 글라스에선 붉은 빛을 띤 칵테일이 흘러내려와 투명한 잔에서 넘실거린다. 오소마츠가 감탄을 내뱉었다. 쵸로마츠는 그런 오소마츠를 흘낏 바라본 후 초록빛 칵테일잔엔 풋사과를 꽂고, 붉은 빛 칵테일잔엔 체리를 떨어뜨렸다. 완성된 칵테일잔을 한 바퀴 돌려 확인해보고는 잔 하나를 쓱 오소마츠쪽으로 밀었다.


"이게 내 거?"


"응."


오소마츠는 자신의 잔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칵테일에 대해 잘 모르는 그이지만 이건 알았다. 칵테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맨해튼'이다. 인디언들이 예전에 쓰던 말로는 '주정뱅이'라는 뜻. 왜 이걸 자신에게 줬는지 알 것 같아 오소마츠는 픽 웃음을 흘렸다. 눈동자를 굴려 쵸로마츠를 보자 그는 이미 잔에 입을 갖다대고 있었다. 잔이 기울어져 칵테일이 입술에 닿자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모든 순간을 뜯어살피며 오소마츠가 태연한 척 물었다.


"내 건 맨해튼이고, 쵸로미쨩 건 뭐야?"


"애플 마티니."


"와, 난 칵테일의 여왕 주고 넌 칵테일의 왕이야?"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어. 그리고 일단 마티니의 바리에이션이긴 하지만 맛은 마티니랑은 거리가 멀어."


이거 생각보다 시거든. 말로는 그리 말하면서 쵸로마츠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오소마츠는 웃음을 터트리며 잔을 들었다. 투명히 빛나는 붉은 물결에 쵸로마츠가 비춰보이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건배를 하는 것마냥 잔을 살짝 움직이고 드디어 칵테일을 한 모금 머금었다.


"어라, 맛있어. 진짜 맛있어!"


"그래? 잘됐네."


"쥬시마츠 것도 맛있지만 이건 이거대로... 쵸로미쨩도 칵테일 만들 줄 아는 구나."


"애초에 쥬시마츠한테 칵테일 만드는 법 가르친 거 나야."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오소마츠가 잔을 내려놓았다. 쵸로마츠가 들고 있는 잔은 그세 반이나 비어져있었다. 새벽이라 그런 건가, 술을 마셔서 그런 건가. 쵸로마츠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풀려 있었다. 오소마츠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진정시켰다. 기회다. 쵸로마츠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 토도마츠라면 얼마든지 그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지만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당사자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오소마츠는 혀로 입술을 쓸고 느리게 말했다.


"이렇게 잘 만들면서 왜 오카마를 하는 거야?"


"...그게 더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럼 이치마츠가 블랙 공장에 들어간 것도?"


"그렇지, 뭐. 그렇게나 말렸는데 말을 안듣더라. 일이 일이다보니 술집만 하는 것보다는 돈 더 받는다면서."


쵸로마츠는 그때 일이 생각나 살짝 웃었다. 답지 않게 비장한 표정을 짓던 이치마츠와 형을 따라가겠다고 하던 쥬시마츠. 쥬시마츠딴에선 의외로 혼자 있길 싫어하는 이치마츠를 배려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두 형은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오카마짓도, 블랙공장 일도 다 그 놈의 돈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막내 동생까지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너만이라도'라며 형 두 명이 부득부득 말리니 그 쥬시마츠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타협점으로 쥬시마츠는 바텐더로 술집에 남고, 쵸로마츠는 오카마를 하되 선을 넘지 않으며, 혼자 블랙공장에 간 이치마츠는 주기적으로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쵸로마츠는 흘낏 오소마츠르 보았다. 그 날, 오소마츠를 치료해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땐 그 대전투나 이익관계같은 것따윈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동생이 일하고 있는 블랙공장을 운영하는 마피아 보스니까.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이치마츠에게 좋은 혜택이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동생과 아주 조금의 관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오지랖때문에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쵸로마츠는 남은 애플 마티니를 입 안에 털어넣었다. 새콤한 과일 향이 가득 퍼졌다. 두 번째 잔을 위해 다시 쉐이커를 잡으니 오소마츠가 또 질문을 던졌다.


"흐응. 왜 그렇게 돈을 벌려고 하는 거야?"


"빚이 있으니까."


"헤에, 빚이 있어? 빚지고는 못 살 성격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한 거 아냐. 다 망할 부모때문이지."


쵸로마츠가 가식 없이 인상을 쓰며 이를 뿌득 갈았다. 새콤하다고는 하나 마티니는 마티니. 술이 약한 쵸로마츠에겐 벌써부터 술기운이 돌고 있었다. 세 치 혀가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몹쓸 부모였어. 똥코털 태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관심이 있는 거라고는 오로지 술, 도박, 마약같은 거 뿐이었지. 그런 인간들이 어떻게 결혼해서 애를 셋이나 낳았는지 모르겠어. 뭐, 술김에 싸지른 게 우연히 세 번이나 이어진 거겠지만. 어쨌든우리가 점차 커질 수록 빚도 어마무시하게 불어났어. 그걸 또 갚겠다고 도박하고, 탕진하고를 무수히 반복하다가 어떻게 된 줄 알아? 약물중독으로 죽었어."


"그런 사람들다운 죽음이네."


"우릴 짜증나게 하는 존재가 죽으니 좋긴 했는데 덕분에 빚이 고스란히 우리한테 내려오더라고."


쵸로마츠가 두 번째 잔을 따르고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빈 속에 독한 걸 마시니 속이 쓰라렸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살던 집을 셋이서 개조해서 술집으로 바꿨지."


"칵테일 기술은 어디서 배운 거야?"


"향락가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부모 밑에서라도 우린 살아야했으니까. 볼 꼴 못 볼 꼴 다 보며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기술이란 기술은 모조리 익혔지."


빈 잔을 내려놓고 쵸로마츠가 가니쉬 만들고 남은 풋사과를 집어 깨물었다. 다 말하고 나니 너무 많이 말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어차피 뱉은 말 주울 수도 없고 왠지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느껴졌다. 불행히도 오소마츠는 알고 있지 않았지만. 오소마츠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평소 빈 틈없는 쵸로마츠가 흐트러진 모습도 신기했거니와 이야기를 듣고 나니 쵸로마츠에게 더 빠져들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예전부터 강했으며 향락가 돌아다니면서 배운 것 중엔 분명 살인 기술도 있었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아까의 상황이 말이 안된다. 무기도 없고, 복장도 적절치 않은 상태에서 몇시간동안 적들을 죽이며 버텨온 것 말이다. 뒤늦게 부하들에게서 상황을 전해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도 괴물이지만 쵸로마츠 그도 역시 괴물의 자질이 충분했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갖고 싶었다. 남자로서도, 한 패밀리의 보스로서도 그를 꼭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었다.


"쵸로미쨩, 이름이 뭐야?"


"지금 부르고 있잖아."


"아니, 가명말고 본명."


쵸로마츠와 오소마츠의 눈이 마주쳤다. 순수해보이면서 강압적인 분위기에 쵸로마츠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쵸로마츠."


"쵸로마츠!"


쵸로마츠, 쵸로마츠, 쵸로마츠... 잊지 않겠다는 듯이 여러번 그 이름을 중얼거리고서 오소마츠는 씩 웃었다.


"있지, 쵸로마츠. 우리 패밀리에 들어오지─"


"─않을래."


"에. 나 말 다 안했는데!"


"뒤야 뻔하지! 난 네 패밀리 안 들어갈거라고!!!"


"왜애애애애! 우리 편 하자아아! 잘해줄게에에!"


오소마츠는 테이블 위에 엎어져서 아이처럼 떼를 쓰기 시작했다. 쵸로마츠는 당연히 요지부동이었지만.


"난 맘 바뀔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빨리 나랑 동생들 여기서 보내주기나 해."


"미안하지만 그건 안돼."


"하? 네 제안 거절했다고 지금 납치감금이라도 할 셈이야?"


"그것도 나쁘진 않네~"


"죽고 싶냐."


"뭐, 그렇게 화내진 말라고. 다 너희를 위한 거니까."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쵸로마츠가 짜게 식은 눈을 하자 오소마츠는 웃기만 했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Ciliegio 패밀리 아지트까지 가서 그들을 말살했을까요?"


"결국 말살했냐."


"어허, 정답이나 맞춰봐."


뜬금없는 문제에 일갈하려던 쵸로마츠의 얼굴이 점점 새하얘졌다. 그랬다. 결론적으로 Pino 패밀리는 고작 오카마 하나때문에 패밀리 하나를 말살시킨 셈이 되었다.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상 이 소문은 이미 싹 깔렸을 거다. 그렇담 쵸로마츠는 기본이고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까지 타 패밀리에게 시달릴 것이 너무나도 뻔했다. Pino 패밀리가 그 전에 무슨 조치를 취했을 지도... 쵸로마츠 눈동자가 삐그덕거리면서 굴러가 오소마츠의 반응을 살폈다. 자긴 아무것도 모른다는듯한 표정이다. 쵸로마츠가 아까 오소마츠처럼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남의 속도 모르고 오소마츠는 소리내어 웃었다.


"망했다."


"자, 어쩔래? 그렇게 나가고 싶다고 사정 사정을 하면 못보내줄 것도 없는데 말이야."


속이 쓰리다. 빈 속에 술을 부어서인지 눈 앞에 있는 새끼때문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되면 쵸로마츠에게 선택지란 없다. 여기 있는 건 좆같지만 그렇다고 나갔다간 진짜 좆될 게 물보듯 뻔했다.이유야 어찌됐든 이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주려고 하고 있는데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 쵸로마츠는 숨을 크게 내쉬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알겠어. 며칠 신세 좀 질게."


"현명한 선택이야! 이참에 며칠말고 아예 들어오는 건?"


"기각."


"쳇, 쩨쩨하긴."


별 게 다 쩨쩨하다, 새꺄. 이젠 아예 대놓고 욕을 해도 대답이 맘에 들어 오소는 흐뭇하게 웃었다.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그의 잔에서 체리 하나가 반짝였다. 오소는 그걸 데굴데굴 굴리다가 집어들었다.


"그러고보니 쵸로마츠 바텐더였으면 이 의미 알겠네?"


"뭐─"


갑자기 입 안에 들어온 무언가에 쵸로마츠 말이 끊겼다. 뭔지 모르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오소마츠만 노려봤다. 오소마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자신의 입에 뭘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건 아니겠지. 쵸로마츠는 살짝 혀를 굴렸다. 둥글고, 살짝 말캉하다. 그것이 혀 위를 구르자 새콤하고 달달한 향이 풍겨나왔다. 그때 오소마츠가 힌트라도 주듯이 쵸로마츠쪽으로 혀를 쏙 내밀었다. 선홍색 혀 위에는 매듭 묶인 체리 꼭지가 있었다. 자신의 입 속에 있는 게 체리라는 걸 안 순간 쵸로마츠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쵸로마츠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체리를 바텐더에게 건넨다는 건 그 날 밤을 함께 보내자는 신호다. 만약 바텐더가 체리를 받아 먹으면 그 제안은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식하게 입에 바로 넣어주기 있냐. 물론 쵸로마츠는 체리를 얌전히 받아먹어줄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냥 뱉는 건 내키지 않았다. 저녀석 인중에 정확히 맞춰줄까 고민하던 쵸로마츠는 무슨 생각이 한 건지 눈을 가늘게 뜨고 고혹적으로 웃었다. 갑작스런 섹시어필에 오소마츠는 도리어 놀랐다.


"날 원해?"


코와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쵸로마츠에게선 상큼한 사과향과 함께 미약하게 체리향이 났다. 오소마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 분위기는 쵸로미다. 손님들을 쥐락 펴락하던 그 오카마 쵸로미다. 오소마츠 눈엔 쵸로미만 보이고, 쵸로미의 웃음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전류가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온다. 반한 상대가 이렇게 유혹을 해오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어디있을까. 눈을 감고 서서히 다가오는 쵸로미를 보고 오소마츠 역시 눈을 감고 쵸로미를 맞았다. 열린 입과 입이 맞닿고 뜨거운 숨이 교차한다. 참지 못하고 내민 혀에 걸린 건 동그란 무언가였다. 이건, 체리? 오소마츠가 눈을 뜨자 쵸로마츠는 이미 눈을 뜨고선 오소마츠를 비웃고 있었다. 체리가 오소마츠 입으로 넘어간 걸 확인한 쵸로마츠는 혀로 오소마츠의 입술을 한 번 핥아올리고 몸을 뒤로 물렸다. 그는 바 테이블에 다리를 꼬고 그 특유의 요염한 미소로 오소마츠를 내려보며 말했다.


"자위나 하시지, 딸딸마츠."


미련없이 일어나 유유히 돌아가는 쵸로마츠를 오소마츠는 멍하게 바라보았다. 쵸로마츠가 떠나고, 문 닫히는 게 신호가 된 것 마냥 오소마츠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참을 소리내어 웃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네, 쵸로마츠~"


쵸로마츠가 핥아준 입술을 손으로 쓸며 오소마츠가 중얼거렸다. 그의 바지 앞섶이 살짝 부풀어 있었다.




공백 미포함 6,646자


완결 아닙니다!!!!

저번 편에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이유는 이제 다음편이 마지막이거든요(대체)"라고 말했지만 아니에요! 사실 원래 생각은 이번 편이 마지막 맞았는데 쓰다보니까 길어져서 분량 조절에 실패해버렸지 뭐예요;;; 계속 이어쓸까, 끊을까하다가 잇는 사이에 연휴 끝나면 또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올립니다! 분량도 한 편 분량 딱 되기도 하고!

진짜 이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어요... Stir에서 저번 4편하고 이번 편이 중요한 편이긴 한데 설마 마무리 부분 넣기 뭐해질 정도고 길어질 줄은... 항상 글 한 편이 5천자 내외로 나와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죠. 어쨌든 이번 편은 떡밥 회수편이었습니다! 쵸로마츠가 그렇게나 돈을 밝힌 이유, 이치마츠 혼자 블랙 공장에 가있던 이유, 오카마면서 싸움 실력이 대단했던 이유까지! 그리고 사실 1편에서 쵸로가 오소한테 "안 팔아, 병신아."했던 것도 동생들이랑 타협점으로 몸 안팔기로 했기 때문이에요. 특히 이치마츠가 부득부득 말렸죠... 실제로 쵸로마츠는 성관계 경험이 없습니다! 접객(자잘한 스킨쉽 있음)이랑 가끔 정보 파는 일 정도? 마피아들 상대하면서 무사했던 이유는 뒷골목에서 갈고 닦은 싸움 기술도 있지만 쵸로마츠의 기세때문도 있어요. 저 천하의 오소마츠도 누를 정도니 말 다했죠. 쵸로미쨩 너무 좋다 흑흑ㅠㅠ

이야, 연휴가 좋긴 좋네요. 글 쓸 시간도 많고, 시동 걸려서 새벽까지 써도 아침에 일어날 걱정 안해도 되고. 흑, 알람 소리 안듣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일 줄은..ㅠㅠㅠ

여기서 끊어서 다음편, 그러니까 진짜 완결편은 비교적 짧을 것 같네요. 근데 또 모르죠 길어질 지도(어쩌라는 거지) 다음엔 한 달은 안 넘기도록 노력할게요...! 아직 시험기간이 아니니 괘, 괜찮을 거야...

그럼 제 글 봐주신 것에 감사인사 올리며, 다들 남은 연휴 잘 보내시길!

'2차 창작 > 오소마츠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소쵸로]너와 나는 그렇고 그런 사이  (1) 2017.08.08
[오소쵸로]Stir 6  (5) 2017.06.12
[오소쵸로]Stir 4  (0) 2017.05.03
[오소쵸로]사탕도 달콤하다  (1) 2017.03.14
[카라이치]Stir 3  (1) 2017.03.12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