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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꾹, 딸꾹. 넓은 교실에 쵸로마츠의 딸꾹질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급변한 상황에 쵸로마츠는 도저히 머리가 따라가지 않았다. 빨간 편지 봉투와 오소마츠를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으니 기다리다 못한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손에 편지를 쥐어주었다. 살짝 거친 편지 봉투의 질감과 오소마츠 손의 온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자, 이게 오늘 거. 내가 너한테 처음으로 보내는 편지."
온기가 사라지고 남은 편지봉투를 쵸로마츠는 손가락끝으로 살짝 쓸었다.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라 그런지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쵸로마츠가 흘낏 오소마츠를 보자 오소마츠는 얼른 읽으라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보챔에 쵸로마츠가 하는 수 없이 스티커 하나 붙여져있지도 않은 편지 봉투를 열었다. 하얀 편지지에 오소마츠의 글씨가 채워져있었다.
「쵸로마츠에게
안녕, 쵸로마츠! 답장만 쓰다 먼저 쓰려니 어색하네~ 이걸 어떻게 한 달 넘게 썼냐 우와...
네 편지 말이야 정체 숨기려고 애쓴 것 같긴 한데 다 티나더라. 오히려 제발 눈치채주세요~하는 느낌? 너 그거 알아? 너 거짓말 진짜 못해! 거의 초반에 알아채버렸다구!
처음엔 잘못 생각한 줄 알고 당황도 하고 방황도 했는데 말야. 네 편지 읽으면서 차차 생각이 정리되었어. 넌 마음 정리했겠지만 아무래도 나도 너 좋아하는 것 같아! 너만큼은 아닐 지도 모르지만 꽤 옛날부터? 와 나도 깜짝 놀랐어! 나 둔감하네!
아무튼 편지 고마워. 나도 그동안 많이 많이 기뻤어! 진짜! 너 마지막이느니 뭐라느니 했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말이야! 이쪽이야말로 끝내려던 거 억지로 시작시켜서 미안!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끝낼 수가 없었어. 그래도 시작이니까 제대로 말할게.
좋아해, 쵸로마츠. 졸업 너도 축하한다!
P.S. 마음 정리했다면서 왜 마지막 말은 '좋아했어요'가 아니라 좋아해요'야?(웃음)
오소마츠가」
"뭐, 라고...?"
"헤헤, 그럼 우리 이제부터 1일인가?"
"그 말이 아니잖아! 이게... 대체 무슨..."
편지지가 들린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쵸로마츠는 편지지에 얼굴을 파묻었다. 지금 모든 상황이 거짓말같아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딸꾹질은 어느 새인가 멈춰있었다. 꿈이라면 이건 필시 악몽이다. 희망고문인 것이다. 쵸로마츠는 이것이 꿈이라면 빨리 깨길 바랐다. 그런데 정말 현실이라면? 그 순간 손에 닿은 온기가 쵸로마츠의 정신을 깨웠다. 쵸로마츠가 천천히 편지지를 내려놓았다. 오소마츠의 얼굴이 생각보다 가까워 쵸로마츠는 흠칫 몸을 움츠러들었다. 여태컷 본 적 없는 진지한 눈빛이 자신을 삼킬 것만 같았다. 쵸로마츠의 반응에 오소마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제 양손으로 쵸로마츠의 양손을 감쌌다. 편지지가 가차 없이 구겨졌다. 쵸로마츠가 손을 떼려하자 힘을 더해 움켜쥐며 손을 이마에 갖다 대었다. 이마는 손보다도 더 뜨거웠다.
"나도 이래저래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역시 잘 모르겠어."
"어...?"
"고백에 대한 토도마츠의 말도, 네 말도 다 이해는 가. 모든 고백이 다 단순하고 로맨틱하고 새콤달콤한 게 아니라는 거."
"..."
"그치만... 그래도 고백이잖아. 거기다 서로 좋아하잖아. 그런데 왜 이래야해?"
"오소마츠, 형..."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손 너머에 있는 검은 눈동자가 쵸로마츠에게로 향했다. 쵸로마츠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안색이 바뀌고 눈썹이 더 처졌다. 얼굴에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사람이 사람을. 그 말이 머릿 속에 팽팽 멤돈다. 중학교 졸업식 때부터 지금까지도 오소마츠를 향한 자신의 마음은 이상한 것이라 여겼다. 근친상간. 단 네 글자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오소마츠는 그것을 그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뿐인 일로 치부해버렸다. 쵸로마츠는 입을 뻐끔거렸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고, 형과 나는 형제라고, 이러면 안된다고 쏘아붙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쵸로마츠는 다시 입을 닫았다.
"흑..."
말 대신 울음소리가 입술사이로 빠져나왔다. 쵸로마츠는 말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3년간 저 이유들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또 비수를 꽂고 싶지 않았다. 그간 쵸로마츠는 이런 마음은 이상하고 더럽다며 스스로를 찔러댔다. 하지만 동시에 그 생각을 부정하고 싶었다. 동성에, 형제라는 것만 제외하면 자신의 마음은 순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동성도, 형제도 아닌 다른 누군가의 탈을 썼다. 이 편지를 오소마츠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순수하게 받아들여준다면 자신의 이 마음이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쵸로마츠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단지 자각한 처음부터 거부당해버린 마음을 자신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기를, 그것 하나만을 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쵸로마츠의 입증은 편지가 들킨 시점에서 엉망이 되버렸다. 그렇지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오소마츠는 여전히 쵸로마츠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더이상 '형'의 것이 아니였지만 여전히 깊고, 또 순수했다. 자신의 눈도 저랬을까.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눈에서 뭘 읽은 것인지 손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미안해."
"에?"
"그동안 눈치 못챘던 거 전부 다 사죄할테니까 나 계속 좋아해주라."
"뭐..."
"나 네가 좋아. 쵸로마츠가 좋아. 이제 알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너무 너무 좋아해. 사랑해. 그러니까 나 계속 좋아해줘. 나 쵸로마츠가 아니면 안돼."
속사포처럼 날아드는 말에 쵸로마츠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무슨 부끄러운 말을 이리 잘도 하는 것인지. 쵸로마츠는 오른손을 비틀어 뺐다. 오소마츠가 간절하게 왼손을 붙잡았다. 놓아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를 향한 마음 정리해서 이제 비었다면 내가 다시 채워줄게. 그동안 몰랐던 분량 다 포함해서 넘쳐흐를 정도로 꽉꽉 채워줄 거야. 그러니까 제발..."
흔들리는 목소리에 쵸로마츠는 한숨을 쉬었다. 예전부터 이랬다. 하여간 다 자기 마음대로였다. 단순하고 저돌적이라서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의 논리대로 모든 일을 진행했다. 갑자기 쵸로마츠가 피식 웃었다. 이제야 왜 오소마츠를 좋아하는 지 알 것 같다. 그 지독히 단순한 성격이 지금까지 쵸로마츠를 이끌었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오소마츠와 함께라면 별 것도 아닌 것이 되버렸다. 동성에, 형제? 이젠 아무래도 좋아졌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뿐이라는 그 얄팍한 논리에 기대고 싶을 뿐이다. 쵸로마츠는 손을 뻗어 오소마츠의 뺨을 꼬집었다.
"...이미 가득 채우다 못해 넘치고 있다고 망할 놈아."
오소마츠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쵸로마츠를 세게 껴앉았다. 서로의 체온과 향취가 온 몸에 달려든다. 심장 옆에 또다른 심장이 쿵쿵 뛰어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똑같이 뛰는 심장박동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아 고개를 꺾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 속 흩날리는 벚꽃잎이 아름답다.
"아아! 진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데!!! 편지도 얼마나 열심히 썼는데!!!"
"웅웅. 알아, 알아. 편지 진짜 진짜 고마워. 너무 기뻤어. 아니, 지금 최고로 기뻐!!!"
"하아... 진짜 다 끝낼 생각이었는데."
"못 끝내, 못끝내! 저얼대로 못끝내! 이제 시작이니깐!"
"알겠어. 알겠다고! 그러니까 이제 좀 떨어져!"
"왜앵~ 쵸로마츠도 좋으면서 괜히 튕기기는~"
"말꼬리 늘리지마! 징그러!"
"너 애인한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뭣─"
"──실례합니다, 호옴런!!!"
교실문이 큰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온 몸에 달라붙은 여러 파편들을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털어낸 쥬시마츠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쵸로마츠는 두 팔을 앞쪽으로 쭉 내밀고 있었고, 오소마츠는 어째서인지 교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 오소마츠형이랑 쵸로마츠형 발견!"
"쥬, 쥬시마츠?!"
"야 임마, 쥬시마츠! 방해하면 어떡해!"
"...세크로스?"
"아니야!!!!! 그보다 여긴 왜 왔어?"
"형들이 시간이 지나도 안와서 찾으러 왔슴다! 다들 배고프니까 빨리 밥 먹으러가쟤! 오늘 아빠가 기대해도 좋다고 했당께요~"
상상만 해도 좋은지 쥬시마츠는 입을 가리고 헤실 웃었다. 문 옆의 시계를 바라보자 졸업식이 끝난지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석들 입장에선 이것도 많이 기다려준 셈이다. 돌아가면 한 소리 듣겠네. 쵸로마츠는 자리에서 황망히 일어나 돌아갈 채비를 했다.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떨어진 졸업장 통을 들고선 오소마츠쪽으로 몸을 틀었다.
"가자, 오소마츠형. 애들 기다린대."
제 앞에 들이밀어진 손에 부루퉁해있던 오소마츠의 얼굴이 맑게 갰다. 오소마츠는 망설임없이 쵸로마츠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손가락 사이로 딱딱한 뭔가가 느껴졌지만 오소마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는 오소마츠를 보고 쵸로마츠가 인상을 썼다.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야. 놔."
"흐엑! 쵸로마츠 매정해!"
"오소마츠형아, 쵸로마츠형아 빨리 와!"
어, 금방 갈게. 쵸로마츠는 쥬시마츠에게 대꾸하고선 한 발짝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쥬시마츠는 이미 신이 나서 저만치 달려나간 후였다. 아니, 뭔가 이상하지 않음?! 연인이잖아! 오소마츠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상대가 쵸로마츠이니 숨길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너무 칼같았다. 아까의 그 핑크빛 분위기는 뭐였던 건인지 따지고 싶었다. 오소마츠는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쥐었다 폈다.
"응?"
오소마츠가 눈을 깜박였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뭔가가 끼어있었다. 동그란 단추가. 오소마츠는 걸음을 멈추고 쵸로마츠를 살펴보았다. 쵸로마츠는 꿋꿋하게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가려지지 못한 귀가 빨갰다. 오소마츠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하여간 이 솔직하지 못한 녀석! 오소마츠는 달려가 쵸로마츠의 목에 팔을 둘렀다. 역시나 두 번째 단추가 없었다. 쵸로마츠는 귀만큼이나 붉어진 얼굴로 오소마츠에게 떨어지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서투른 거짓말쟁이는 형제들에게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숨길 셈인듯했다. 만나자마자 들킬 것이 반응이 눈에 선했다. 자, 그녀석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모르는 척 해줄까, 놀랄까, 아니면... 오소마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쵸로마츠와 함께 쥬시마츠의 뒤를 따랐다.
공백 미포함 3,849자
심장시리즈 완결!!! 와아아아아!!!!(뛰어댕긴다) 첫 시리즈물이었던 심장시리즈가 무사히 끝이 났네요! 오래걸렸는데 글이 짧아서 죄송합니다... 중간에 한 번 날려먹어서... 그래도 그간 잘 보셨나요? 이 결말이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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