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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부 카라X양호 선생 이치
창문으로 들어오는 볕이 따스하다. 이치마츠는 창가에 누워있는 고양이와 함께 햇살을 쬐며 머그컵을 만지작거렸다.. 들고 있던 머그컵에 든 커피는 이제 식었는지 김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이치마츠는 두어번 후후 불고 나서야 커피를 홀짝였다. 조용한 양호실을 감싸는 봄 햇살과 커피 한 잔. 여유로운 한 때에 이치마츠는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티쳐~!"
그 미소는 5분도 채 가지 못 했지만. 복도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치마츠는 인상을 와작 구겼다. 곧이어 굳게 닫혀있던 양호실 문이 요란스럽게 열리고 해맑게 웃고 있는 남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 2가 적힌 푸른 농구복이 살짝 흔들리고, 훤히 드러나있는 무릎에선 붉은 피가 맺혀있었다.
"선생님, 나 다쳤다!"
세상에 자신이 다친 사실을 저렇게 밝게 말하는 놈이 어디 있을까. 이치마츠는 숨길 생각도 없다는듯이 대놓고 혀를 찼다. 마츠노 카라마츠. 올해 들어온 1학년, 농구부 소속. 타고난 체격과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지만 운이 없는 것과 더불어 항상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탓에 주변을 살피지 못해 운동부라 해도 다치는 일이 유독 잦았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이번 주에만 4번째였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휴식을 방해한 불청객을 내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교장선생님과 학부모들, 그리고 통장잔액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 잡았다. 이번 주에만 몇 번 불렀을지 모를 그를 부르며 자신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카라마츠는 아주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슬쩍 자신의 다리를 내밀었다. 익숙하고도 뻔뻔한 태도가 어쩐지 짜증나서 이치마츠는 다시 한 번 혀를 차고 허리를 숙여 상처를 살폈다. 지름 5cm는 되어보이는 제법 큰 상처가 무릎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찰과상. 넘어지기라도 한 건가. 물기가 살짝 남아있는 걸 보면 양호실에 오기 전에 상처부위는 잘 씻고 온 모양이었다. 하도 많이 다치다보니 이정도 대처는 하고 오는 편이었다.
"너말이야, 지난 주에도 넘어지지 않았었냐."
"새로운 훈장이지!"
겨우 넘어진 거 가지고 훈장은 무슨 얼어죽을. 상처 씻을 때 아프다고 온갖 난리를 쳤을 게 눈에 선했다. 처음 찰과상 치료할 때 그랬으니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말을 흘러들으며 항생제 연고를 꺼내 적당히 발라주고,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너무도 익숙해보이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
"너무 조이면 말해라."
"알겠다!"
"아, 너무 조이는구나 하고 말거지만."
"풀어주는 게 아닌건가?"
이치마츠가 대답 대신 일부러 붕대를 잡아당기자 카라마츠는 악 소리를 한 번 내고 조용해졌다. 말과 달리 이치마츠는 아까보다 느슨하게 붕대를 감았다. 이정도면 되었겠지. 붕대를 자르고 단단히 고정시킨 후 이치마츠가 느리게 허리를 피자 그제야 카라마츠의 표정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는 호선을 그리고 있고, 눈은 반달처럼 곱게 휘어있다. 창문과 마주 보고 앉아서 그의 얼굴이 햇살을 받아 참 환하게 보였다. 그게 조금 눈부셔 이치마츠는 인상을 썼다.
"선생님은 손이 참 예쁜 것 같다."
또 시작이네. 이치마츠는 대답 대신 한숨을 삼켰다. 카라마츠는 양호실에 올 때마다 이치마츠에게 꼭 하나씩은 칭찬을 하곤 했다. 맨 처음은 아마 상냥하다는 거였었지.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무슨 소름 끼치는 소리냐며 내쫓아버렸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이제는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하나같이 자신과 거리가 먼 말들이었고. 상냥하다, 웃는 게 귀엽다, 머리카락이 부드럽다, 손이 예쁘다 등.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을 여기서 토해낸다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그런 말들은 카라마츠 또래의 여학생에게 더 잘 어울리겠지. 가령, 농구부 매니저라든가. 구급상자를 집어넣고 이치마츠는 머그컵을 들고 일어났다.
"치료 끝났으니까 나가."
"고맙다, 티쳐!"
카라마츠는 웃으며 대답을 하고는 양호실에 들어왔을 때처럼 씩씩하게 달려나갔다. 양호실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이치마츠는 느리게 머그컵에 입을 대었다. 커피는 완전히 식어버린지 오래였다.
학교 안이 소란스럽다. 복도 끝에 있는 양호실에서도 알 정도로. 한창 조회를 하느라 조용해야할 시간에 오히려 여러 교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함성과 웃음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이던가. 축제나 체육대회는 아직 한참 멀었는데. 이치마츠는 머그컵을 티 스푼으로 휘휘 저으면서 달력을 살폈다. 오늘 날짜를 확인하고 나서야 이치마츠는 짧게 아 소리를 냈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옆 나라의 문화가 부러웠던 것인지 초대 이사장이 만든 학교만의 연례 행사였다. 원래는 간단히 평소에 주고 받기 부끄러운 고맙다는 말을 선생님께 전하자는 게 취지였지만, 어떤 반이 노래로 선생님을 울리고 나선 어느 반이 더 선생님을 감동받게 하는가 대결로 변질되어버린지 오래였다. 합창, 연극, 영상... 그 형태도 다양했다. 혹시나 선물 경쟁으로 번질까봐 그건 학교측에서 막아놓긴 했지만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먹으려고 과자를 가져오는 건 괜찮다'는 허용이 되어서 선생님과 함께 과자파티를 벌이는 반도 제법 되었다. 선생님들도 말로는 이런 거 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제자들이 어떤 것을 할까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 아카츠카 학교의 스승의 날이었다. 그렇게 훈훈한 날, 이치마츠는 혼자 양호실에서 커피를 휘젓고 있다. 너무 세게 휘젓는 탓에 커피가 백의에 튀었다. 어떤 반 담임도 아니고, 어디 수업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보니 이치마츠와 같은 특수 교사는 이런 날에 배제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도 안 부럽거든."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변명을 하는 것처럼 이치마츠가 중얼거렸다. 쓰디쓴 마음을 달래려고 홧김에 커피를 원샷해버리니 입 안 전체가 데여 홧홧거렸다. 바보 같은 짓을 했네. 이치마츠는 한숨을 푹 쉬고는 아예 엎드려버렸다. 카페인이 들어간 뇌는 빙글빙글 돌고 있었지만 이럴 때에는 그냥 자고 잊는 게 제일이었다. 오늘도 양호실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려왔고, 잠들기에는 딱이었다.
"티쳐~!"
단 잠을 깨우는 건 어김없이 카라마츠의 목소리였다. 애써 무시하려 팔 안쪽으로 머리를 파묻었지만 쾅하고 문이 열리자 더이상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숨길 생각도 없이 인상을 구기며 몸을 일으키자 평소와 달리 교복을 반듯하게 입은 카라마츠가 보였다. 방금 자다 깨서 흐릿한 시야에 눈을 두어번 깜박이고 나서야 약간 불그스름한 양뺨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엔 열사병이냐. 아직 그럴 시기는 아닌데. 이번엔 또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카라마츠가 대뜸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얇은 두께의 직사각형 선물 상자는 보라색 포장지에 파란 리본이 둘러져 있었다.
"...뭐야, 이거."
"스승의 날 선물이다!"
"선생은 학생에게 뭔갈 받는 게 안된다만."
"아, 안되는 거였나?!"
"몰랐던 거냐."
선물을 주지도, 그렇다고 다시 가져가지도 못 한 채 카라마츠는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 걸 보면 나름 정성껏 준비한듯 했다. 꼼꼼히 포장된 선물상자를 지그시 바라보던 이치마츠는 한숨을 쉬며 선물상자를 받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카라마츠의 얼굴이 밝게 개었다.
"어디 가서 말하면 죽는다."
"물론이지!"
카라마츠는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하고 방긋거리며 웃었다. 말은 안 해도 다 알 것 같은 얼굴이네. 이치마츠는 한숨을 쉬며 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다른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알기라도 하면... 그렇다고 이제와서 다시 거절하기에는 카라마츠의 표정이 너무나도 밝았다. 안 열어보냐며 재촉까지 해오고 있었다. 알면 망하고 다른 직장 찾는 거지, 뭐. 이치마츠는 자신이 상자를 열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카라마츠를 흘낏 보고 조심스레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얼마나 꼼꼼히 포장한 것인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어 결국 그냥 찢어버렸지만. 조심스레 상자를 여니 거기엔 보라색 넥타이가 들어있었다. 좋은 것은 아니고 흔히 구할 수 있는 오히려 싸구려에 가까웠다. 학생이 사온 거니까 당연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멀쩡한 선물에 입가가 살짝 풀리려고 할 때 이치마츠의 시선이 넥타이 끝에 닿았다. 넥타이에 떡하니 박혀있는 해골에.
"......이게 뭐야."
"맘에 드는가?"
이치마츠는 그 질문에 차게 식은 눈으로 답했다. 평범한 포장에 속아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이치마츠는 거칠게 넥타이를 상자에서 꺼내 카라마츠에게 내밀었다.
"너나 해, 이딴 거."
"너무하다, 티쳐!"
"너한테 딱이겠네."
"물론 나에게도 잘 어울리겠지만..."
"조금쯤은 겸손한 척을 해봐라."
억지로 카라마츠 손에 들려주자 카라마츠는 울상을 지으며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가 서있고 이치마츠가 앉아있다보니 올려다보는 기분이 묘했다. 카라마츠는 금방이라도 넥타이를 매줄 것처럼 넥타이를 이치마츠 목에 둘렀다.
"티쳐, 항상 넥타이 안 하지 않는가.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해봐라."
매달리는 손길에 이치마츠는 그저 뚱한 표정으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넥타이 한 모습을 보고 싶으면 직접 해보라는듯이. 그 뜻을 눈치채고 카라마츠가 의자를 끌고 와 앉아 넥타이를 이리저리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항상 손을 움직이는 건 자신이어서 몰랐는데 카라마츠 손이 제법 컸다. 손마디도 두꺼워보이고, 저정도면 공을 한 손에 잡을 수도 있겠지. 손에 머물러있던 시선은 점차 팔을 따라 몸쪽으로 움직였다. 교복때문에 잘 보이진 않지만 옷 아래 숨겨진 몸은 다부져보였다. 많이 다치긴 해도 일단 운동부란 걸까. 이렇게 마주 앉아있으니 자신보다 어깨가 큰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래도 키는 비슷한 것 같았는데, 요즘 애들 성장 빠르구나. 어쩐지 속이 부글부글 끌어 이치마츠는 짧게 혀를 찼다. 그와중에도 카라마츠는 넥타이를 이리 저리 움직여보느라 바빴다.
"너 넥타이 맬 줄 모르지?"
"교복 넥타이는 매봤다!"
"너네 교복 넥타이는 줄만 당기면 끝이잖아."
나중에 하게 될 테니 잘 봐둬. 카라마츠의 손을 밀어내고 이치마츠가 넥타이를 잡았다. 카라마츠보다 얇은 손가락이 넥타이 사이를 오간다. 카라마츠가 볼 수 있게 일부러 느리게 넥타이를 매고선 이치마츠가 매듭을 제 목까지 올렸다. 만족하느냐는 식으로 바라보자 카라마츠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역시 좋다."
"넥타이한 게 말이냐?"
"아니, 이치마츠 선생님이."
갑자기 제대로 불린 이름에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넥타이를 잡고 그 끝에 입을 살짝 맞추었다. 해골과의 키스. 이치마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스승의 날은 학생이 선생한테 사랑 고백하라고 있는 날이 아니야."
"알고 있다."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고. 심지어 우린 동성이야."
"그것도 알고 있다."
"그럼 내가 네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단 것도 알고 있겠네."
"응. 알고 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서 넥타이를 뺐다. 파도가 치듯 넥타이가 이치마츠의 품 안에서 넘실거렸다. 그게 개의치도 않은지 카라마츠가 당당하게 웃었다. 햇살을 받은 그 미소는 언제나처럼 눈부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거다."
"내 말 뭘로 들은거야."
"훗, 이치마츠 선생님이 하는 말이라면 언제나 잘 듣고 있다고?"
그래서 이치마츠 선생님이 날 싫어한다는 말 안 한 것도 잘 알고 있다. 카라마츠가 곱게 눈을 접어 웃으며 시선을 맞춰오는 것을 보고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렸다. 그랬었나. 쿵쿵 울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기억을 헤짚으니 확실히 '싫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방금 고백을 들었을 때까지. 싫다는 한 마디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굳이 받아줄 수 없다고 한 스스로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더 정확히는 이해하길 거부한 것이겠지. 몰려오는 생각들을 피하려 눈을 질끈 감자 타이밍 좋게 예비종이 울렸다. 그 소리에 이치마츠는 저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길게 뱉었다.
"종 쳤다. 들어가."
"그럼 또 오겠다, 티쳐!"
언제나와 같은 밝은 모습으로 카라마츠는 양호실에서 나갔다. 따스한 햇살, 조용해진 양호실. 달라진 것은 이치마츠 혼자였다. 돌려주는 것을 깜박한 넥타이를 보며 이치마츠는 헛웃음을 흘렸다. 제 마음이 어떻든, 카라마츠의 마음이 어떻든간에 상관없었다. 저 시기의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니까. 매일 매일 밀려오는 눈부신 청춘 속에 이런 조그마한 양호실에서 보내는 10분 남짓한 시간은 산산히 부숴져내릴 것이 분명했다. 청춘이 아닌 이치마츠는 아닐 지 몰라도 카라마츠는 그럴 터였다. 그럴 거라고 이치마츠는 믿었다. 사람이 겁나 구석을 택한 그에게 사랑은 너무나도 버거운 것이여서. 멍하니 구름이 떠다니는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치마츠는 봄 햇살이 눈부셔 눈을 감았다.
공백 미포함 4,691자
카라이치 연성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아니, 잠깐만 하긴 했었나...?(가물) 나름 오소쵸로 다음 좋아하는 커플링인데 오쵸만 하느라 연성을 통 안 한 것 같네요; 미안해, 그래도 내가 너희도 참 좋아한다...
티알을 바스호로 갔다왔더니 바스호가 너무 보고 싶어서 써왔네요. 저는 역시 청춘 넘치는 학교au가 좋습니다ㅠ 물론 극장판 18카라마츠는 제가 쓴 카라마츠랑 전혀 다르지만... 극장판 나오기 전에 많이 날조해놔야죠!(?) 그런데 이건 솔직히 다음편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생각해둔 게 없어서; 그냥 여기서 끊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무책임)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좋은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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