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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오소마츠상

[오소쵸로]중독

라나애 2019. 1. 21. 11:33

사랑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어느 TV 방송에서는 유통기한이 2~3년 정도라고 했다. 사랑의 호르몬인가 뭔가의 수명이 그 정도라면서. 호르몬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이 정말 맞을지도 모르겠다. 3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오소마츠형과 사귄 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오소마츠형과 사귀게 된 게 마냥 좋고 행복했다. 동성에 근친에 같은 얼굴. 그 삼중고를 뛰어넘고 이어진 우리들은 정말 운명이라고,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우리 둘만의 사랑에 취해서 바깥을 무심코 잊고 말았다. 애들이 집을 비웠을 때 혹여나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닫아놨던 문이 열리고 마주한 얼굴을 나는 아마 죽어서도 잊지 못할 거다. 그게 그동안 모른 체 해왔던 우리 사랑의 실체니까.


"나 취직했어."


"오, 그래? 축하해."


무덤덤한 말투로 오소마츠형의 등에 대고 말했다. 춥지도 않은지 한텐 하나 걸치고 밖에 앉아있던 오소마츠형이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양 뺨은 입고 있는 옷만큼이나 불그스름했다. 추우면서 왜 저러고 있는건지... 옆에 앉으라는 듯 제 옆을 톡톡 두드렸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척 하며 꼿꼿하게 자리를 지켰다.


"집 나가서 자취할 거야."


끝까지 태연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말끝이 살짝 떨려버렸다. 침을 한 번 삼키며 조심히 숨을 골랐다. 오소마츠형은 나를 보고 눈을 두어 번 깜박이더니 옆에 있던 재떨이를 가져다 담배를 비벼껐다. 새빨갰던 불씨가 꺼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래. 알겠어."


깔끔한 대답에 오히려 맥이 빠졌다. 그거뿐이야? 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삼켜냈다. 설사 붙잡는다고 해도 남지 않을 거니까. 그래도 더 할 말이 있을까 싶어 잠시 기다려봤지만 오소마츠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한 대 더 피고 들어올 생각인 걸까. 잔소리 대신 한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뭐라 더 얘기할까 하다가 다 부질없는 것 같아서 등을 돌렸다. 끝이다. 이걸로 된 거다. 몸이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니까. 나도, 오소마츠형도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는 거다. 3년이면 충분히 즐긴 거잖아. 그치? 살며시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오늘따라 문이 무거워 잘 밀리지 않는다.


"너를 좋아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싶지는 않아."


"...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오소마츠형은 더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내게 습관처럼 담배를 한 개비 건넸다. 안 받고 그냥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자 오소마츠는 멋쩍게 웃으며 담배를 물고는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라이터는 몇 번 틱틱 소리를 내며 불똥만 튀기다가 겨우 불이 붙었다. 담뱃대 끝에 벌건 불이 붙더니 연기와 함께 새까맣게 변했다. 말을 걸어놓고 오소마츠형은 무심히 내가 아니라 어느 먼 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도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자꾸 널 보고 싶고, 심장이 뛰는 건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단 말야."


그치만 그건 너도 그렇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오소마츠형은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뱉고는 씩 웃었다. 매캐한 냄새에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시비라도 거는 건가. 내가 화라도 내길 바라는 걸까. 그 수에 넘어가고 싶지 않아서, 그 어떤 말도 꺼내선 안 될 것 같아서 주먹을 꽉 쥐며 버텼다. 나는 대체 뭘 바라고 계속 서 있던 거야. 자신을 질책하며 문을 열어젖혔다. 눅눅한 집안 공기를 맡으니 조금 살 것도 같았다.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와. 기다릴게."


뒷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아 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다들 먼저 자고 있는지 집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신발도 벗지 못하고 현관 앞에서 한참이나 울음을 삼켰다. 오소마츠형이 어떤 얼굴로,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나는 아마 끝까지 모를 것이다.


끝났다. 일 끝나고 무리하게 회식에 어울려서 그런지 어깨와 팔, 다리에 추라도 단 것처럼 몸이 무겁다. 질질 몸을 끌고 계단을 올랐다. 붉게 녹이 슨 철계단이 삐걱거리며 울었다. 고작 2층이 이렇게 높았나? 겨우 문 앞에 섰지만 몇 번 헛손질을 한 후에야 문을 열 수 있었다. 집 안은 캄캄했고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불을 켜봐도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은 적막함에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밥통엔 남은 밥은 없었고, 냉장고에 남아있던 반찬은 묘한 냄새가 나길래 결국 또 라면을 끓였다. 붉은 국물에 계란까지 풀고, 매콤한 향기가 솔솔 올라오는데도 그다지 맛있겠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보글보글 끓인 라면을 들고 1인용 코타츠에 앉았다.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기계적으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TV에서는 저녁 드라마가 한창 나오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다른 채널 드라마가 더 크게 흥해서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이 드라마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냥 아침에 뉴스 보는 채널에서 하는 드라마라 습관적으로 TV를 틀면 이게 나오길래 보는 것뿐이었다. 드라마에서는 흔한 치정극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들의 애인이 맘에 안 들었던 어머니가 그 애인을 불러서 돈을 주며 꺼지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네까짓 게 어떻게 우리 아들을! 널리고 널린 전개에 안 그래도 없던 밥맛이 뚝 떨어져 채널을 돌려버렸다. 다른 채널에선 맛집 방송을 하고 있었다. 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일단 라면을 해치우고서 일찍 자리에 누웠다. 일 때문에 지쳐서인지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도 내일도 또 나가서 일을 해야 하긴 했지만. 이불을 돌돌 감고 웅크리며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아직 데워지지 않은 이불을 감싸도 차갑기만 했다. 집에 있을 땐 이불이 이렇게 차가운 것인지 몰랐는데. 아이처럼 체온이 높은 오소마츠형과 쥬시마츠 사이에서 자다 보니 춥기는커녕 가끔은 더울 지경이었다. 너무 더워서 잠에서 깨보면 항상 오소마츠형이 날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내가 뒤척여도 깨지도 않고, 오히려 날 끌어안으면서 '쵸로마츠~'하고 잠꼬대를...


안돼. 그만해.


자꾸만 떠오르는 오소마츠형의 모습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머리까지 덮어버리니 숨쉬기가 괴로웠다. 이렇게 떨어지면 오소마츠형을 잊을 수 있다 생각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질기고 질긴 이 연심을 잘라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잠들지 못하는 것을 형이 알게 되면 웃을까. 담배를 건네며 웃었던 오소마츠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 몇 날 밤을 더 보내야 이 마음이 끝나는 걸까.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있기는 한 걸까. 눈물과 함께 긴 숨을 토해냈다. 잠들기엔 너무나도 이른 밤, 오래전에 끊었을 담배 한 개비가 너무나도 간절했다.



공백 미포함 2,445자


#글러의_소설을_그림러들이_만화화해서_동시에_올려보자

해시태그를 위해 쓴 짧은 글입니다. 만화화는 오소마츠가 담배연기 뱉는 부분으로 올릴 예정이에요! 두근두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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