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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얼굴의 쵸로마츠가 동생들과 함께 물건을 옮기고 있다. 갈라진 벽을 매꾸고 그 위에 페인트를 덧칠했다. 햇빛과 바람에 제 모습을 잃은 건물이 점차 활기를 뛰기 시작한다. 어른이 하기에도 힘든 중노동임에도 소년들은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장난치기 바빴다. 소년들이 손이 닿는 곳마다 색깔과 빛이 어지러이 튀었다. 아지랑이마냥 그 풍경이 흔들린다. 성인인 쵸로마츠는 그것을 가게 뒤편 담벼락에 기대 바라보았다. 그의 곁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 두 구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시체를 밟자 그것은 먼지가 되어 산산히 흩어졌다. 쵸로마츠의 눈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고요히 날아가는 먼지들을 담았다.
쵸로미는 꿈에서 깨어났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그는 두 눈을 깜박였다. 어둡다. 하지만 이 장소가 어두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래쪽에선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천따위로 눈을 가린 건가. 쵸로미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손목도, 발목도 테이프같은 것으로 묶였는지 움직일 수가 없다. 테이프가 옭아매는 곳이 시큰거린다.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로 쵸로마츠는 기억을 되짚어갔다. 오소마츠, 첫 손님, 포르말린향. 착착 맞혀져가는 퍼즐에 유액을 뿌리듯 멀리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쵸로미는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쟤가 정말 그 오카마라고? 그렇게 예쁘게 생기진 않았던데 정말로 오겠어?"
"하루하루 다른 곳에 가던 녀석이 하루도 빠짐없이 저 오카마 술집만 갔잖아. 오소마츠 그 망할 놈 취향이 그렇나보지, 뭐."
다 들린다, 개새끼들아. 쵸로미는 이를 으득 갈았다. 뒷담 아닌 뒷담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 단어가 쵸로미의 신경을 긁었다.
「오소마츠」
쵸로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새끼때문에 납치당했구나.
"오소마츠형~"
"왜~ 이 형님 지금 바쁘시다~"
"하라는 서류 안하고 놀고 있는 거 다 알거든~?"
"아, 들켰어~?"
"들어갈게~"
토도마츠는 집무실의 문을 밀었다. 육중한 문은 작은 소리 없이 매끄럽게 열렸다. 오소마츠가 서류의 산 사이에 당당히 다리를 올린 채 토도마츠를 반겨주었다. 서류도, 펜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토도마츠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보스는 저렇게 서류 처리를 안하지, 언더보스는 할 줄도 모르지. 결국 저 서류더미를 떠맡게 되는 것은 토도마츠였다. 어휴. 이 도움도 안되는 형들.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여기 온 목적은 그게 아니다. 토도마츠는 문을 살며시 닫고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톳티?"
"Ciliegio 패밀리한테서 연락이 와서 말이야."
"에엥? 걔네 아직 살아있어?"
"그 전투에 안 간 녀석들은 살아있지."
중요인물들 대다수가 죽어서 패밀리 유지하는 것도 벅차보이지만. 토도마츠는 질린 얼굴로 태평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보스를 보았다.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이 어린 남자가 현재 마피아계를 술렁이게 만든 대학살의 주인공이란 걸 누가 상상이나 할까.
"그래서 그 잔챙이들이 우리한테 무슨 볼 일이래?"
"오소마츠형이랑 친한 오카마를 납치하고 있다는데?"
"쵸로미쨩? 나름 조심한다고 영업시간 전에 갔던 건데 소문 쫙 퍼졌었나보네."
"어쩔 거야, 오소마츠형?"
오소마츠가 의자에 앉은채 가볍게 책상을 찼다. 오소마츠와 의자가 빙그르르 돌아가고, 의자에 걸쳐놓은 모피자락이 흔들린다. 딱 한 바퀴만 돈 후 그는 눈 앞에 있는 제 동생을 보았다. 매우 무덤덤한 표정으로.
"어쩌긴 뭘 어째. 마피아가 고작 오카마 하나로 움직일 리가 없잖아."
토도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무자비하다.
"그렇네~ 하여간 그 인간들도 참 바보라니까~"
"그래도 좀 아쉽네. 쵸로미쨩 꽤 재미있었는데. 날 들여보내주는 곳도 거기밖에 없었고."
그야 그렇겠지. 토도마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보스로 직위하고 난 뒤 지난 몇년 동안은 잠잠하길래 책임감을 느끼고 몸을 사리는 건가 싶더니만 결국 터트린 일이 그거다. 부하들이 돌아왔을 때 한 번, 다음 날 다친 채로 돌아온 오소마츠 모습에 한 번, 그리고 그 결과에 또 한 번 놀랐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초반에 부하들과 함께였다고는 하나 혈혈단신으로 그곳에 있던 모든 이를 죽여버렸으니... 1이 만들어낸 0. 지극히 단순한 숫자가 가리키는 뜻은 경악적이었다. 위상이 드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적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마피아를 대상으로 하는 향락가가 이런 위험한 인물을 받아줄 리가 만무했다. 납치당한 그 쵸로미란 사람이 가엽기는 하나 결국은 자업자득이니 토도마츠는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았다. 돌연 오소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게를 잃은 의자가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아갔다. 오소마츠는 걸쳐놓은 모피를 집어들고 가볍게 말했다.
"뭐, 그렇지만 그쪽에서 이렇게 처들어갈 명분을 친히 내어주시니 가봐야 예의겠지?"
"우와... 그게 무슨 예의야."
오소마츠는 말없이 입꼬리를 올려 비릿하게 웃었다. 그는 그저 즐기고 있을 뿐이다. 어린 보스라고 무시하던 자들의 뒷통수를 친 것을, 그리고 스스로 올라온 자리에 앉아 기어오르는 자들을 짓밟는 것을. 오소마츠는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손을 한 번 돌렸다. 손짓 한 번으로 수십명의 부하들이 그의 앞에 이렬로 늘어섰다. 오소마츠가 그 사이를 유유히 걸어가며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카라마츠 지금 블랙공장에 있지? 지금 바로 납입할 수 있는 물량이 어느 정도 되나 확인하라고 해."
"또 한바탕 할 생각이구나? 알겠어. 전해놓을게."
"아, 그리고 가기 전에 하나 더. 실제론 아니더라도 우리가 고작 오카마 하나때문에 가는 건 좀 모양 빠지잖아? 그치 톳티."
"네네~ 우리 부하 중 한 명이 죽었단 식으로 소문 조작하면 되지?"
"역시 내 동생! 그럼 잘 부탁해~"
오소마츠는 토도마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서 방에서 나갔다. 닫히지 못한 문 너머로 그의 모피자락이 펄럭인다. 토도마츠는 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러고 가서 또 얼마나 죽이고 올 지... 부하들도 데려갈 테니 이번에야말로 Ciliegio 패밀리를 괴멸시키고 올 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네~"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 잘 보좌해야지, 뭐. 오소마츠가 보스로 즉위할 때부터 카라마츠와 맹세한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스인 그를 따르겠다고. 힘들게 올라왔고, 힘들게 올려놨다. 여기까지 온 이상 주춤할 이유따윈 없다.
"그치만 뭐어... 저 망나니 막아줄 유능한 보좌관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토도마츠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저새끼들 뇌가 꽃밭인가. 마피아가 고작 오카마 하나를 구하러 올 리가 없잖아.'
쵸로미는 짜증 섞인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소마츠와 쵸로미는 서로에게 있어 어디까지나 손님과 오카마일 뿐이었다. 찾아오지 않으면 그대로 끝날 그런 관계. 그 관계를 마피아들이 탐탁치 않게 볼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알고서도 들였다. 돈때문에. 그 사건을 들은 후 오소마츠가 술집을 다시 찾았을 때, 쵸로미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보통 내기가 아니라는 것과 그가 이끄는 패밀리가 장차 크게 될 것이란 걸. 그래서 쵸로미는 오소마츠를 가게로 들였다. 줄을 설 거면 연이 닿은 지금 줄을 서야한다. 나중이 되면 늦는다. 오소마츠와 친해져 소문도 좀 흘리고, 뒤늦게 Pino 패밀리 밑에 줄을 서려는 마피아들을 끌여들여 빨아먹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는 각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설마 납치할 줄이야.'
쵸로미는 침착하게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 두명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분명하게 들리지 않으니 벽 너머에 있는 듯했다. 주변에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에 누가 있었다면 쵸로미가 정신을 차린 것을 눈치채고 뭐라 말이라도 했을 거다. 고로 여기엔 쵸로미 한 명. 그렇다면 망설일 것 없지. 쵸로미는 손가락을 움직여 치마자락을 들춰냈다. 남색과 살색 사이에 은빛 물체가 반짝였다. 녀석들은 쵸로미를 얕봤다. 외진 곳에 있는 술집을 꾸려나가는 오카마는 손님에게 아양이나 떨 줄만 알고 이런 일에 대처 못할 줄 알았냐? 병신새끼들. 쵸로미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외졌기 때문에 뭘 했는지 더욱 소문이 나지 않는다. 그가 얼마만큼의 마피아를 어떻게 상대했는지 같은 것 말이다. 애시당초 돈을 밝혀 아양만 떨 줄 아는 오카마였다면 오소마츠를 들이지도, 오소마츠가 또 오지도 않았다.
쵸로미는 허벅지 안쪽에 매달린 검집에서 단검을 꺼냈다. 금속 차가운 표면이 허벅지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선 단검을 단단히 고정한 가는 손가락을 접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칼날이 테이프에 닿았다. 쵸로미는 거침없이 한 번에 테이프를 그었다. 단검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테이프가 벌어졌고, 그는 단번에 테이프를 떼어냈다. 손이 풀린 다음이야 쉬웠다. 안대를 벗고, 발목 부근 테이프도 떼어냈다. 쵸로미는 무표정으로 아직도 시큰거리는 관절을 문지르며 주변을 살폈다. 그 어떤 가구도 물건도 없이 텅 빈 방은 실제 크기보다 더 커보였다. 쵸로미는 문에 다가갔다. 열쇠식으로 그 외의 특별한 잠금장치는 딱히 없어보였다. 하지만 남자들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리는 것을 보아 이 문 바로 너머에 마피아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자, 그럼 이제 어쩐다.'
상황맥락 상, 쵸로미를 납치한 것은 Ciliegio 패밀리다. 현재 술렁거리는 마피아계에서 이정도 일을 벌일 패밀리는 그 사건의 피해자인 Ciliegio 패밀리밖에 없다. 그렇다면 Pino는, 오소마츠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인질이라고 잡은 것이 고작 오카마다. 그들이 시시콜콜하게 움직일 필요까진 없다.
'하지만 오긴 오겠지.'
보스와 친한 오카마를 납치했다는 것. 이건 명백한 도발이다. 그것이 비록 유치하다 할 지라도 말이다. Pino는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물며 상대는 보스 한 명에게 당했던 Ciliegio 패밀리다. 굳이 움직일 필요도 없지만 움직이지 않을 필요도 없다. 이 기회에 확실히 싹을 밟고 자신들의 파워를 한 번 더 떨칠 수 있으니까. 더욱이 오소마츠는 대담하고 저돌적인 자다. 시동이 걸린 그가 멈출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오소마츠가 오든 안오든 결과는 똑같아.'
난 결국 죽을 테니까. Pino에게도, Ciliegio에게도 쵸로미는 관심 밖이다. 살아있어도 좋을 거 없는, 죽여둬야하는 존재. 쵸로미는 자신의 최후를 상상하며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렸다. 돈을 쫓아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건가. 쵸로미는 허리를 숙여 아까 떨구었던 단검을 손에 쥐었다. 형형하게 빛나는 칼날에 쵸로미의 표정이 비친다. 가늘게 뜬 눈은 차갑게 내려앉아있었다. 단검을 도로 검집에 넣은 후 쵸로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딴 데서 죽을까보냐!!!"
그의 발이 정확히 문 손잡이를 향해 돌진했다. 문 손잡이는 큰 소리를 내며 간단히 부서졌고, 놀란 남자 두명이 곧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텅 빈 실내를 보고 그들이 놀라기도 전에 쵸로미가 손날로 한 남자의 뒷목을 가격했다. 남자가 힘없이 쓰러지자 뒷따라 오던 남자가 쵸로미에게 총을 겨누었다. 총알보다 그의 다리가 더 빨랐다. 총이 날아감과 거의 동시에 총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쵸로미는 혀를 한 번 차고, 남자의 팔을 잡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육중한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떨어졌다. 팔을 뒤로 꺾어 그 위에 앉은 쵸로미는 반항할 틈도 주지 않고 가는 팔로 남자의 목을 졸랐다. 허덕거리던 몸이 몇초만에 축 처졌다. 둘 다 기절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쵸로미는 몸을 일으켰다. 소란스런 소리와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쯧, 왜 총을 쏴서는. 거리도 가까웠구만."
쵸로미는 바삐 두 남자의 몸을 더듬었다. 쓸 만한 것은 권총 두 자루와 일본도 한 자루정도였다. 총은 허벅지 밴드채로 떼어내 양 허벅지에 부착하고, 일본도는 아예 검집에서 꺼내어 단단히 쥐었다. 조용히 빠져나가려 했으나 총소리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된 이상 강행돌파밖에 없다.
"어이, 보초 어디갔어?!"
벌써 왔네. 뒤늦게 쵸로미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여기는 C03─"
쵸로미는 단칼에 남자의 목을 베어냈다. 시체로부터 뜨거운 선혈이 사방으로 뿜어져나왔다. 더러워. 쵸로미가 인상을 썼다. 당장이라도 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쉬운대로 쵸로미는 얼굴만 손으로 닦아냈다. 현재 진행형으로 눈덩이 굴러가듯 목소리, 발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Ciliegio의 아지트 근처는 숲이 에워싸고 있고, 그 속엔 강도 있다. 건물에서 벗어나 강까지 도망친다면 헤엄쳐서 돌아갈 수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이 주변 역시 Ciliegio 패밀리 소유라 감시망이 펼쳐져 있을 수 있는데다 쵸로미는 이 근처 지리를 잘 모른다. 잘 도망칠 수 있을까. 피어오르는 불안에 쵸로미가 간단히 대답했다.
"죽을 힘을 써서라도 도망쳐야지 뭐 어쩌겠어."
쵸로미는 달리기 시작했다.
공백 미포함 4,747자
와, 이게 며칠만이지? 올해 새내기라 요새 바빠서 글을 거의 못썼어요ㅠㅠㅠ 이것도 정신없이 써서 뭐라 쓴 건지 잘 모르겠다ㅠㅠㅠㅠ 그래도 이번 달 안에 2편을 올렸네요! 워후!
과연 쵸로미는 도망갈 수 있을 것인가(두둥)
어휴 기력 딸린다... 저 갈게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중간에 혼잣말 들어갔었엌ㅋㅋㅋㅋ 미쳤나봨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 올리자마자 보신 분들 죄송합니다 중간에 (((여기 더 써넣어라 나야))) 나와서 당황하셨지요ㅠㅠㅠㅠㅠ 제가 다 멍청이라서 그래요 바보 라나애 엉엉ㅠㅠㅠㅠㅠㅠㅠㅠ 그 부분 현재 지웠고요 지금 수정중입니다ㅠㅠㅠㅠㅠ 죄송해요 정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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