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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블랑

 

※레스큐 오소마츠X학생 쵸로마츠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쵸로마츠는 그저 새파랗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다 눈부신 태양 빛에 눈을 찌푸렸다. 아직 여름이라 하기에는 애매한 시기지만, 기온만큼은 여름이라 해도 믿을만한 5월의 어느 날. 쵸로마츠는 얼음을 넣은 컵에 보리차를 부었다. 위로 동동 떠 오른 얼음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금이 쩍쩍 갈라졌다. 오늘은 몇 분 만에 오려나. 5월에는 불이 잘 나진 않으니까 10분? 그래도 요새 나들이가 많아서 자잘한 일들은 많으려나. 조금 더 여유 둬서 20분으로 하자. 타이밍 좋게 진동이 울린 스마트폰 화면에는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오소마츠의 문자와 함께 약속 시각을 넘긴 시각이 떠올랐다. 물방울과 함께 송골송골 맺힌 컵을 부드러이 감싸 쥔 쵸로마츠는 몇 모금 홀짝이며 한숨 쉬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쵸로마츠는 언제부터인가 오소마츠가 제시간에 올 것이라는 기대를 접었다. 사람 앞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고, 사건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예상할 수 없는 사건에 뛰어드는 레스큐라는 직업을 가진 오소마츠에게 약속 시각은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쵸로마츠는 처음엔 이해하려고 해보았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자 어쩔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섭섭해 티를 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미안해하는 그의 모습에 쵸로마츠는 자신의 마음을 밀어두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아예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 늦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혹여나 쵸로마츠가 밖에서 기다릴까 봐 무슨 약속이든 집에서 기다리게 하는 오소마츠의 배려를 알기에, 쵸로마츠는 오히려 그 기다림을 즐겨보기로 했다. 오소마츠의 모습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언제 올지 혼자 내기하는 것이 쵸로마츠에게 최근에 생긴 소소한 취미였다. 20분 안에 오면 그냥 놀고, 20분 후에 오면 닭꼬치 하나 사달라고 해야지. 스스로 매긴 제한시간까지 3분 남긴 것을 확인한 쵸로마츠가 얼음 하나를 오독오독 씹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깝네."

전혀 아까워 하지 않는, 오히려 기쁜듯한 어조로 중얼거린 쵸로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카츠카 호수 공원. 새들이나 찾아올 정도로 방치되었던 호수가 최근 산책로를 깔고 동상이나 운동기구 등을 설치하여 가볍게 산책을 즐길 만한 곳으로 탈바꿈하였다. 새로 깔린 길이 햇빛을 받아 반들반들하게 빛나고 그 위를 지나가는 연인, 친구, 아이 손 잡고 나온 가족 등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공원이 북적거린다. 여유로운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많은 사람 틈으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나란히 걸었다. 머리 위에 뜬 해에 짧아진 그림자가 서로 맞닿지도 않은 채 흔들렸다.

"오늘 날씨 진짜 좋다! 그치, 쵸로마츠?"

"그렇네."

"꽃도 예쁘게 피었고~ 정말 나들이하기 좋은 날이네~"

"응응."

약속 시각에 늦어서인지 오소마츠의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높았다. 그 말 하나하나를 평소처럼 받아치는 쵸로마츠 모습에 오소마츠는 멋쩍어 목덜미를 긁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화를 내거나 하는 게 좋았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화내기도 하고 섭섭함을 티 내기도 했지만 날이 갈 수록 무덤덤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것이 고맙긴 해도 아이가 그 나이 맞지 않게 점점 어른스러워지는 것에 오소마츠는 입맛이 썼다. 난 딱 저만했을 때 온갖 떼를 다 쓰며 하고 싶었던 건 다 했던 것 같은데. 쵸로마츠가 의젓해질 수록 자신이 그만큼 의지가 안되는 존재 같았다. 설사 쵸로마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할 지라도 오소마츠는 어른들 틈에 밀리고 밀려 제 곁으로 온 이 아이를 온 힘을 다해 지탱해주고 싶었다. 살짝 손을 잡자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한 번 흘겨보고는 새끼손가락 하나만 걸었다.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완전히 밀어내지 않는 것이 귀여워 입꼬리가 저절로 씰룩거린다. 요즘은 그리 심하지 않지만 정신없는 사건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가끔 찾아오는 이런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소중하고 소중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까울 만큼. 그냥 걷기만 하기에는 아쉬워서 오소마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게 핀 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자고 할까, 저기 카페 있는 것 같은데 먹고 싶은 것 좀 사줄까. 고민하며 배회하던 그의 눈동자가 한 곳으로 향했다.

"자전거 대여소가 있네?"

"어디?"

오소마츠의 손끝이 몰려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 위로 '자전거 대여소'라는 간판이 보이고, 사람들 사이사이로 각종 자전거가 열에 맞춰 서 있는 것이 엿보였다. 어쩐지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더라니. 바로 옆에 있는 너른 공터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볍게 도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이끌고 가까이 다가가니 공중전화 부스같이 생긴 무인 티켓소에 '오픈 기념 가격 인하!'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여러 부스가 있어서인지 대여하기까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거다! 오소마츠가 눈을 빛내며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 어때? 자전거 타고 호수 도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냥 걸어서 돌아도 되잖아. 돈도 들고."

"오픈한지 얼마 안 되어서 이번 달까지만 가격 싸게 한다잖아. 이럴 때 한 번 타보고 그러는 거지~"

"그렇지만..."

ㅅ자를 그린 입이 오물거리며 다른 이유를 입에 담는다. 점점 길게 이어지는 말과 방황하는 눈빛이 평소와 달라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오소마츠는 입꼬리를 씩 말아올렸다. 쵸로마츠와 함께 지낸지 2년. 안그래도 거짓말 못하는 이 아이의 속마음을 아는 것이란 호수 밑을 바라보는 것보다 쉬웠다.

"쵸로마츠, 자전거 못 타?"

쵸로마츠의 어깨가 눈에 띌 정도로 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안된다는 말을 길게 늘어놓던 입이 뻐끔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둥근 머리가 짧게 끄덕인 것을 오소마츠는 놓치지 않았다.


"오, 오소마츠 형! 이거 꼭 타야 해?"

"이미 빌렸는데 무슨 소리야. 형이 꽉 잡고 있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

"형이 멋대로 빌린 거잖아! 나, 난 못 타! 그리고 자전거 좀 못 탄다고 사는 데 지장 없고!"

"다음에 쵸로마츠랑 같이 자전거 타고 싶어서 그래. 한 번 해보자, 응?"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다음에...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미소와 그 세 글자를 곱씹었다. 당장 내일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두 사람에게 그 단어가 지닌 무게는 남달랐다. 다음에 또 여기 올 수 있어? 아무 일 없이 오늘처럼 또 웃으면서. 쵸로마츠의 질문이 눈빛에 담겼는지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머리를 헝클이듯이 쓰다듬었다.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않게 자전거 타는 법만 익히고 다음엔 형이랑 같이 호수 돌자! 기대감이 감도는 오소마츠의 표정에 결국 마음을 다잡은 쵸로마츠는 눈을 질끈 감고 페달에 발을 올렸다.

"...절대 놓으면 안 돼. 알겠지?"

"당연하지! 형아 못 믿어?"

"솔직히 못 믿겠는데..."

"형아 상처!"

우는 시늉을 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난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아도 긴장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핸들을 꼭 쥔 쵸로마츠가 뒤를 두어번 보고 나서야 겨우 페달을 밟았다.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기 무섭게 자전거가 휘청거린다. 핸들을 쥔 손과 팔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고 쵸로마츠가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다. 레스큐 활동으로 단련된 팔로 자전거를 단단히 붙들은 오소마츠가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항상 똑부러지던 쵸로마츠가 이렇게 아둥바둥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라 눈을 깜박일 때마다 그 모습을 사진 찍듯이 기억 속에 담았다.

"혀, 형...! 나 못하겠어! 못해!"

"괜찮아, 괜찮아! 형이 잘 잡고 있으니까. 더 빨리 밟아봐. 느리면 더 넘어가기 쉬워."

"더 빨리? 그치만 형이..."

"난 괜찮으니까."

우리 쵸로마츠 내가 못 잡아줄 리 없잖?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패달을 힘껏 밟았다. 아까보다 힘차게 자전거가 비틀거리면서도 넓은 공터를 돌아다닌다. 흙먼지가 날리면 날릴수록 비틀거렸던 자전거가 차츰 중심을 잡아간다. 점차 붙기 시작한 속도에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에 비하면 작은 어깨와 가냘픈 팔. 그래도 꼿꼿하게 자전거 위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입술을 앙 깨물고 한껏 진지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거봐, 할 수 있다니까. 오소마츠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슬쩍 손을 놓았다. 초록색 자전거가 오소마츠 곁을 떠나 앞으로, 앞으로 달려간다. 아직 조금 비틀거리긴 해도 넘어지진 않는다.

"오소마츠형 잘 잡고 있지? 오소마츠형?"

한참 달리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쵸로마츠가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언제부터? 그보다 안 놓는다면서. 오소마츠가 없다는 걸 깨닫기 무섭게 쵸로마츠의 동요가 전해졌는지 자전거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쵸로마츠, 앞! 다급하게 날아온 오소마츠의 말에 얼른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굵은 나무 기둥이었다. 이내 쿵 소리와 함께 시야가 푸른색으로 가득 찼다. 드문드문 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보며 상황을 판단하기 이전에 손과 다리에서 아릿한 고통이 올라왔다. 자전거 아래에 깔린 다리는 쓰라리고, 마지막에 반사적으로 땅을 짚은 손바닥은 바닥에 쓸려 작게 피도 새어 나왔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쵸로마츠가 다리를 감싸며 작게 신음을 흘렸다.

"쵸로마츠!"

바로 달려온 오소마츠가 자전거를 치우고 쵸로마츠를 일으켜 앉혔다. 나무에 부딪힐 때보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나고, 자전거의 바퀴가 헛돌았다. 빌린 자전거라는 사실도 잊고 쵸로마츠를 이곳저곳 살펴보던 오소마츠는 표정을 구겼다. 다친 것은 분명 쵸로마츠인데 더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보니 쵸로마츠는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오소마츠형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괜찮다고, 별로 안 다쳤다고 말하며 그걸 증명하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던 쵸로마츠는 발목에서부터 올라오는 시큰한 통증에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소마츠의 미간에 더욱더 깊은 주름이 파였다. 쵸로마츠가 당황하며 접질리지 않은 다리에 힘을 주어 다시 일어나려 하자 오소마츠는 다리 아래에 팔을 넣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른바 공주님 안기. 순식간에 높아진 시야에 쵸로마츠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창피하게! 그 와중에 오소마츠형의 체향과 탄탄한 가슴팍이 느껴져 얼굴이 더 붉게 달아올랐다.

"오소마츠형, 괜찮으니까 내려줘!"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했잖아. 얼른 집에 가서 치료하자."

"자전거는!"

"아, 맞다."

그제야 오소마츠의 시선이 자전거로 향했다. 오소마츠가 내팽개쳤던 자전거는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쵸로마츠 일에 열이 올랐다가 차분해지니 등골에 땀이 흘렀다. 빌린 건데 망가지진 않았겠지? 망가졌으면 물어줘야 하나?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쵸로마츠를 한 번, 자전거를 한 번 본 오소마츠는 한숨을 내쉬며 잠시 쵸로마츠를 내려주고 자전거를 살폈다. 다행히 흠집이 좀 생겼을 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이거 물어줄 돈이면 쵸로마츠 좋아하는 닭꼬치가 대체 몇 개야. 머릿속으로 셈을 해보다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절뚝거리면서 그 옆에 선 쵸로마츠가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이번엔 절대 놓지 마. 일부러 장난스레 톡 쏘게 말을 한 쵸로마츠에 오소마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한 손으론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전거 뒤를 잡은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도르륵 소리를 내며 자전거가 부드럽게 움직인다. 페달에 올리지 않은 쵸로마츠 발이 앞뒤로 흔들렸다.

"다음에는 안 놓을게."

"다음에는 앞 잘 보고 탈게."

동시에 나온 말에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또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손과 다리가 아팠지만, 다치게 한 것에 미안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웃는 날도 오겠지. 핸들을 잡은 오소마츠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친 쵸로마츠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다음에 또 오자."

"응, 다음에 또."

 


공백 미포함 4,478자

 

 늦었지만 블랑님 생일 축하드려요~!~! 와아~!~!(뒷북) 블랑님께선 천천히 주셔도 된다고 했지만 오랜만에 연성이라 신이 나서 달려버렸습니다... 레스학생 좋아요. 귀여워요. 알콩달콩하고...ㅠ 그게 제 글에 잘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새 날씨가 덥지만 좋길래 자전거 타고 싶어서 우리 쵸로마츠 태워줬습니다! 비록 조금 다치게 했지만!(?) 두 사람은 집 돌아가서 상처 잘 치료하고 알콩달콩하게 지냈겠죠~ 흑흑 행복해라 오소쵸로ㅠㅠ

 

생일은 지났지만 블랑님도, 이 글 봐주시는 분들 모두 모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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