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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의 도서관 챕터 1 '하얀 마법사' 기반 연성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플레이 하지 않으신 분들은 보지 않는 걸 권장합니다.
※해당 콘텐츠(하얀 마법사)의 대사 및 문장을 일부 인용했습니다.



─꿈을 꾸었다.

나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았다. 드넓은 들판엔 푸르른 풀과 꽃으로 생명력이 넘치고, 그 위를 어째서인지 적개심이 없어진 몬스터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바람이 상쾌하다. 그 바람을 타고 색색의 풍선이 하늘을 향해 드높게 올라간다. 처음 보는 풍경에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사방에서 여러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소란스럽지 않고, 도란도란 즐거운 분위기다. 용병 사무소에서 스치며 봤던 용병들도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니 호쾌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얼떨결에 마주 손을 흔드는 내 곁으로 페어리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페어리퀸 에피네아가 고고하게 앉아있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나를 보고 싱긋 미소 지었다. 도굴꾼과 밀렵꾼들로 인간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던 그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미소였다. 나는 가볍게 묵례로 인사를 하고 다시금 이 세상을 둘러보았다. 어디에 가도, 어디를 보아도 세상엔 평화와 기쁨이 넘쳐흘렀다. 이것은 마치, 그래, 마치 언젠가 하얀 마법사가 말했던 신의 도시와 같은 풍경이었다. 슬픔도, 고통도 없는 그런 세상.

"용병!"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부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아린은 날 보고 활짝 웃더니 이쪽으로 뛰어왔다. 부부는 웃음을 흘리며 그러다 다친다며 작게 핀잔을 던졌다. 둘에게서 아린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에게 달려든 아린 때문에 더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 전속력으로 내게 안겨든 아린을 살짝 떼어내자 아린은 허리에 손을 얹고서 부러 부루퉁하게 말했다.

"하여간 뭐하다가 이제 온 거야. 늦었잖아!"

"꼬마, 하얀 마법사는?"

"어휴, 그 말 할 줄 알았어. 누가 하얀 마법사한테 푹 빠진 용병 아니랄까봐. 뭐, 이젠 용병이라고 부르기도 뭐하지만!"

아린이 빙그레 웃으며 허리춤에 있던 내 무기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마법처럼 무기가 산산조각이 나더니 빛이 되어 사라졌다. 내가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니 아린은 그런 날 보고 웃으며 이제 싸울 필요 없다고 말했다. 철이 들기 전부터 들었던 무기가 사라졌다. 진절머리나게 해오던 전투를 할 일이 없어졌다. 믿기지 않아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오랜 세월 쌓인 굳은살과 상처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하얀 마법사라면 그곳에 있어."

"그곳?"

"하얀 마법사랑 용병이랑 자주 대화 나눴던 곳 있잖아."

아린의 말을 듣고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그 건물이 있을 것 같지 않단 생각이 들었지만 다리는 무척 익숙하다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 사이를 빠져나와 언덕에 오르니 마치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거대한 건물이 달빛 아래 위용을 드러냈다. 오로라 대신전.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천천히 그 안에 발을 들였다. 똑같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 흔적이 엿보이는 종이들이 축포처럼 날아올랐다.

"아, 누군가 했더니! 어서 와요. 같이 술 한잔하지 않을래요?"

밝게 웃으며 어깨에 팔을 두르는 그에게서 미약하게 술 냄새가 났다.

"비어완, 미안하지만 나는..."

"마스터께선 옥상에 계십니다."

"마르스."

마르스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비어완을 데리고 유유히 사람들 틈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답지 않은 배려가 어색했다. 평소처럼 의연해 보여도 실은 그도 들뜬 것일까. 연구에 지쳐 그동안 웃고 다니는 것은 비어완 뿐이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웃고 있었다. 이곳의 분위기가 낯설지만 싫지는 않다. 활기가 넘치는 로비를 뒤로하고 나는 계단을 올랐다. 자주 올랐던 계단이 유독 길게만 느껴졌다. 적막함 속에 내 발걸음만이 존재했다. 마지막 발걸음 소리가 서서히 사라져가고, 드디어 마주한 문 앞에 서서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째서인지 긴장감이 흘렀다. 문을 열면 그가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아는 그가. 나는 느리게 문을 열었다.

"오셨군요."

그가 있다. 하얀 마법사다. 안심되어 나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하얀 마법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제 옆을 손으로 가리켰다. 로라는 뜻인가. 나는 별말 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우와..."

수많은 별이 제각기 빛을 우리에게 쏘아대고 있었다. 별의 수는 점차 늘어나 파랑 물감을 섞은 것 같은 검푸른 밤하늘이 빛들로 가득 찼다. 별들이 모여 하늘 끝에서 지상을 이을 정도로 크고 웅장한 은하수를 자아내었다. 그 중심에 달이 있었고, 곧이어 초록빛 오로라가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풍경을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내 눈에 저 수많은 별이 새겨질 것만 같았다. 그 어떤 어휘와 단어로 표현해도 모자랄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다 옆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당신의 그런 표정은 처음 보는군요."

따스한 푸른 눈동자가 나에게로 향하고, 하얀 머리카락에 바람에 따라 나부꼈다.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서 있는 그는 꼭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예감에 나답지 않게 옷깃을 붙들자 그는 또 잘게 웃었다. 곱게 눈꼬리를 휘어가며 웃던 그는 나른하게 숨을 내뱉으며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찾은 궁극의 빛, 제가 만들어낸 신의 도시입니다."

"정말로 해냈군."

"네. 그간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한 것을 생각하면 감사 인사를 듣기엔 너무 과분하군. 하얀 마법사, 당신이 일궈낸 성과이니."

"아뇨, 제 연구를 도와준 제자들과 당신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하얀 마법사가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가 난간에 기대섰다. 그가 서있는 곳이 이 세상의 시작이자 끝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가 뒤돌아봄과 동시에 유성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빛의 실이 뒤엉켜간다.

"덕분에 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일순 숨이 멎었다. 죄악감이 들 정도로 그가 애틋하게 나를 바라보았기에. 온갖 말들이 입속에서 감돌았다. 나야말로 고맙다, 그동안 수고했다, 그리고...... 분명 전해야 할 말이 많을 터인데 정작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생판 다른 말이었다.

"돌아와, 하얀 마법사."

그가 웃었다. 평소처럼 부드러웠으나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그가 저 아름다운 풍경에 흡수되어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그에게 손을 뻗자─

───나는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빗소리가 나를 깨운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자 엉망진창이 된 하얀 마법사의 연구실이 보였다.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이를 악물었다. 입안에 피 맛이 감돈다. 꿈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그리고 현실은 아릴 정도로 썼다. 차라리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쏟아져 내리는 눈물이 현실이 아님을 잔혹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하얀 마법사...!"

그를 단 한 번이라도 더 '하얀 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와 단 한 번이라도 더 대화할 수 있을까. 나를 옭아매는 불안들을 떨쳐내며 나는 억지로 다리를 움직였다.

"하얀 마법사! 어디에 있나! 어서 모습을 드러내!!"


내 외침이 주문이라도 된 마냥 말을 끝나기 무섭게 짙고 무거운 기운이 급습해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뜨니 그곳엔 '그'가 있었다. 이젠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외관을 가진 그가. 그의 상징이던 하얀 머리칼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붉은 로브 속에 있는 것은 끝없이 깊고 깊은 어둠뿐이었다. 그 가운데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빛만이 그가 사람이었던 무언가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등장으로 삽시간에 공기가 차게 가라앉았다. 존재만으로도 위축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다. 비가 아닌 식은땀에 옷이 젖어 들어감이 느껴졌다. 눈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울렁거렸다.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의 힘에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음을. 그런데도 나는, 어째서 죽을 걸 알면서도 그를 쫓아 왔을까.

"...마지막으로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하얀 마법사."

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아니. 네 모습을 보니 이젠 그렇게 부를 수도 없겠군."

허리춤에 있는 무기에 손을 갖다 대었다.

"......검은 마법사."

무기를, 꺼내 들었다.

"자, 와라. 도망칠 생각은 없으니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새겨주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에게 달려나갔다. 그의 기운을 실은 바람이 피부를 앙칼지게 할퀴었다. 아픔도, 슬픔도, 비참함도 전부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에게 공격을 퍼부은 순간, 참았던 눈물이 떨어졌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몸이 무겁다. 눈앞이 흐리다.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다. 나는 벌써 죽은 것인가. 비는 여전히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젠 고통마저 내 것이 아니었다. 점점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도 나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매달릴 무언가를.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만약 신을 믿지 않는다면 무엇을 믿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돈을,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믿고 살아가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어지는 마지막 순간, 당신은 무엇을 믿으며 눈을 감겠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울린다. 언젠가 하얀 마법사가 내게 한 질문이다. 그때 나는 뭐라 답했더라. 어찌 됐든 마지막 순간에 듣는 것이 그의 목소리라니 어쩜 이리 잔혹할까.

"이봐, 용병! 정신 차려! 죽지 마!"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아린이다.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또 다른 존재. 아린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

아, 그런가.
이것이 내가 찾던 무언가인가.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믿는 것인가.

"용병! 죽으면 안 돼, 용병!"

아린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차가워진 손에 온기가 닿은 것 같다. 이젠 내 감각마저 맞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단 하나, 내가 믿는 것이 있다.

인간.

지금까지 나는 많은 인간을 봐왔다. 돈으로 뭐든 해결하는 자, 돈을 모으려면 뭐든지 하는 자, 틀림을 알면서도 어리석은 짓을 하는 자, 위선을 떠는 자... 거짓말로도 인간은 결코 좋은 존재가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

소중한 것을 잃은 자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인한지 알기에. 그것은 그 어떤 두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붙드는 힘이다. 슬픔이 큰 만큼 그 의지는 강해진다. 그래, 어린 몸으로 날 따라온 꼬마처럼.

나는 떠돌이 용병이다. 돌이켜보면,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생이었다. 해가 저물고 바람이 옷깃에 스미는 어느 날에, 내 주검도 어디엔가 낙엽처럼 뒹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그날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수많은 전장 속에서 난 계속 살아남았다. 살아남아 돈을 벌고, 밥을 먹고, 다시 싸워서 돈을 벌었다. 그러며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삶에 대한 염증과 허무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고 희망을 보았다.
그 희망은 절망으로 물들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희망을 품는다.
후대의 누군가가 부디 검은 마법사를 막아주기를.

나는 그를 비록 막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죽을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꽤 큰 타격은 입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삶에 대한 미련은 없다.
단 하나, 내게 미련이 있다면─

"날 두고 가지 마! 용병!!"

─아린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것뿐.




공백 미포함 4,214


오랜만에 와서 쓴 글이 오소마츠상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꾸벅)

메이플을 하다가 오랜만에 차원의 도서관을 또 했는데 하마용병 뽕이 차서ㅠㅠㅠㅠㅠㅠㅠㅠ

다들 하마용병 파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 하마용병 우주 최고예요ㅠㅠㅠㅠㅠ 엉엉ㅠㅠㅠㅠㅠㅠㅠ

하마용병으로 연성 한 번 해야지, 해야지 계속 이랬는데 결국 오늘이 되어서야 하네요... 허허...

어, 음 끝맺음을 어떻게 하지...


하마용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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