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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암 (자캐)
2. 족제비(애완용)→이로치 비조푸
3. 창백한 은하수
※자캐인 리암이가 포켓몬 의인화 자캐인 탓에 양해를 구하고 2번 키워드를 변경했습니다.
※자캐 설정과 러닝한 커뮤를 섞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이 세상은 작은 나에게 있어선 지나칠 정도로 넓었다.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을 높은 곳에서 빛나는 태양, 그 빛을 받으며 푸르름을 내뽐는 나무들, 끝도 한도 없이 흘러내리는 냇물,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여러 포켓몬들까지. 낮은 내 시야로 보아도 무척이나 아름답고 설레는 풍경이었다. 그 어떤 것 하나 내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 세상을 좀 더 보고 싶었다. 이 세상을 알고 싶었다. 역무원 아저씨와 나의 작은 소망을 품고 나는 한 발자국 나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잠시 머문 곳의 따스함이 어느 곳에나 있을 거란 착각을 품은 죄는 무거웠다. 이 세상은 책에서나 보았던 '약육강식'이란 단어로 쉽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품을 듯한 자연은 이미 누군가의 영역임을 나는 몰랐었다. 나무 열매는 커녕, 발을 붙히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들은 나를 내쫓으며 나에게 지독한 사람 냄새가 난다며 힐난했다.
왜?
왜 사람과 같이 있던 게 나쁘지?
왜 그런 게 누군가를 공격할 이유가 되는 거지?
무수히 떠오르는 질문의 대답을 찾을 새도 없이 나는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때때론 원치 않는 싸움을 하기도 했다. 어느새 상처와 배고픔은 나의 절친이 되어있었다. 내가 한 선택이니 후회는 없었다. 힘들긴 해도 가륜마을에선 못 볼 여러가지를 보게 된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나 가끔씩 외로움과 서글픔이 찾아오는 날엔 생명의 구슬을 꼬옥 움켜쥐고 울다 잠들곤 했다. 그 날도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어~이. 야, 일어나봐. 죽었나? 아닌데."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겁게 내려 앉은 눈꺼풀을 조심히 들어올렸다. 은은히 내려오던 달빛이 누군가의 그림자에 쉬이 가려졌다. 앗, 잠깐만. 누가 있다고? 이렇게 코 앞에?
─위험해.
"으아아!"
"커헉!"
공격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나도 모르게 사이코키네시스가 나가버렸다. 그림자로 검게만 보였던 누군가는 단숨에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생각보다 작은 몸이 힘없이 축 처졌다. 하얀 머리카락에 흙먼지가 묻고, 푸른빛 소매가 땅바닥에 펼쳐졌다. 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동안에도 그 자세는 바뀌지 않았다.
─움직이질 않네.
"해, 해치웠나...?"
"멀쩡하거든?! 누구든 살아나는 마법의 주문 해줘서 고맙다, 이 꼬맹아!!"
"으악!!"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며 움츠려들자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레 팔을 치우니 한 14~15살쯤 되보이는 소년이 궁시렁거리며 제 옷을 털고 있었다. 나폴거리는 소매나 허리를 매어진 띠, 폭이 넓은 바지를 발목만 동여매어 고정한 것 등 난생 처음 보는 옷이었다.
─저건... 동쪽 지역의 의상 같네.
"그러게. 저런 옷 책에서 본 적 있어. 실제로 보니까 더 멋지다..."
─생긴 걸 보니 비조푸인가 보네.
"응. 그런데 색이 달라."
"어?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죄송해요!"
"먼저 공격한 게 누구인데 쫄기는."
부루퉁해있던 소년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반격할 셈인가? 이번만큼은 내가 공격 받아도 할 말이 없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보폭의 차에 거리는 쉽게 메꾸어졌다. 등에 닿은 딱딱한 감촉에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고작 1m가량을 두고 푸른 눈동자가 올곧게 내게 꽂혔다.
─사이코파워로 날아서 도망칠까?
"안돼. 이 근처는 부란다 영역이라 위험─아야!"
"이녀석, 기껏 걱정해줬더니 다짜고짜 기술을 날려? 그것도 에스퍼를?"
딱 소리와 함께 이마에 통증이 퍼져나갔다. 기술은 아닌데?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눈만 깜박이고 있자 그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으스스한 곳에 웬 시체가 널부러져 있나하고 걱정했더니만 팔팔하네."
"에, 저..."
"너 이름은?"
"리─"
꼬르륵. 배 깊은 곳부터 우러나온 허기에 황급히 배를 감쌌다. 그렇다고 소리가 들어갈 리가 만무했지만. 잠시간의 침묵 후 그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연기도 뭣도 아닌, 진심으로 내가 웃겨서 그런 듯했다.
─어쨌든 우리에게 적대감은 없나 보네.
응, 그런가봐. 메일의 말에 동감을 표하며 나는 그를 따라 멋쩍게 웃었다.
옷에 나무열매를 대충 문지르고는 냉큼 한 입 베어물었다. 이가 파고 들기 무섭게 터져나오는 과즙을 침과 함께 삼키며 게걸스럽게 나무 열매를 먹어치웠다. 체하겠다, 야. 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나는 아까보다는 조금 느리게 열매를 오물거리며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기, 형."
"'한'이라고 불러."
"한이 형은 왜 저한테 나무 열매를 준 거야?"
"엉?"
푸른 눈동자는 진짜 몰라서 묻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게 그대로 드러나는 타입이구나. 태평한 생각을 하며 모른 척 새 나무 열매를 집어들었다. 그치만 어쩔 수 없다. 진짜 모르니까. 한이 형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너 배고파 보이길래."
"그치만 지금까지 아무도 나한테 나무열매 준 적 없는걸."
"응?"
이번엔 한이 형이 눈을 깜박였다. 시선을 떼지 않고 나무 열매를 크게 깨물었다. 이번 건 시다. 얼굴이 잔뜩 찌푸려 졌는데도 한이 형은 날 보고 웃기는 커녕 진지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각할 때 한 손으로 턱을 톡톡 치는 게 그의 버릇인듯했다.
"아... 하긴 여기 녀석들 하나같이 다 까칠하더라."
"한이 형은 이곳 포켓몬이 아니지?"
"엉. 네가 상상도 못 할 곳에서 왔지!"
"우와!"
순수하게 감탄하자 한이 형이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거칠고 투박한 손길이었지만 어쩐지 다정해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있지, 왜 여기까지 왔어?"
"바람따라, 구름따라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이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우와, 멋있는 말이다!"
"에헴, 그렇지? 그러는 너야말로 왜 여기에 있어? 너한테서 사람 냄새가 나는데."
쉴 새없이 움직이던 입이 멈추었다. 사람 냄새. 나무열매를 옆에 내려놓고 내 몸 여기저기를 킁킁거렸다. 아무리 맡아도 나뭇잎이랑 흙이 뒤섞인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나 그렇게 냄새 나?"
"냄새가 그 냄새가 아니야. 그 뭐랄까... 흠... 분위기? 느낌? 직감? 딱 보면 알겠어. 네가 사람이랑 지냈다는 걸."
"그래?"
"트레이너한테 버려지기라도 한 거야?"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예의가 없네.
하하... 그럴 수도 있지, 뭐.
"음... 버려졌달까. 트레이너가 알이었던 날 잃어버려서 역무원 아저씨가 대신 키워주셨어. 좀 크고 나서 가고 싶은 데 가라고 해주셨고."
"헤에."
한이 형은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는지 입을 열었다가 꾹 다물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려도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기운내라고, 꼬맹이. 저기 하늘을 봐봐."
"하늘은 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나무열매도 던져두고 입을 닫을 생각도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이 검푸른 하늘에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그 위에 하이얀 달이 위용있게 박혀있었다. 새하얀 빛들은 어두운 밤하늘과 대비되어 꼭 창백해보였다.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에 꼭 별 세계에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둥실 떠올라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별빛이 스며들었다. 주먹을 쥐자 별빛이 내 손을 스쳐지나갔다.
"별이 엄청 많지?"
"응! 엄청 많네! 꼭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아."
"푸하핫. 그래, 그러네. 그래도 말이야. 그닥 다르지도 않아."
밤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뒤를 돌아보았다. 한이 형은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빙그레 웃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한이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앞을 향해 걸었다. 곧이어 밤하늘이 그를 품었다. 새하얀 그는 금방이라도 별이 되어 밤하늘의 일부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왠지 무서워져서 어깨에 손을 올리자 돌연 그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반동으로 양 소매가 출렁거렸다. 어리둥절해하는 날 보며 그는 기고만장하게 말했다.
"이 별만큼 포켓몬도 사람도 많다, 이거야. 사람냄새 좀 난다고 대뜸 공격부터 하는 포켓몬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친절하고 젠틀하게 대해주는 포켓몬도 있다는 거지.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지!"
그리고선 한이 형은 나를 껴앉았다. 작아만 보였던 그의 가슴은 생각보다 넓어서 내가 그 품에 기대기에 충분했다. 또다시 머리를 헝클어트린 한이 형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 눈을 올곧게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힘내라. 언젠간 너에게 친절한 이들을 만나지 않겠어?"
청량한 그의 푸른 눈은 별처럼 밝지만 별과는 달리 한없이 따스했다.
"그렇네!"
우리들은 경계심도 없이 꺄르르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 이야기, 한이 형 이야기, 들은 이야기까지. 달이 사라지는 것도 모르고 한참을 웃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마자 옆 자리가 비어있단 걸 알았다. 손을 까닥이자 맞잡아주는 손 없이 나뭇가지가 걸리적거렸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고작 하루 만났을 뿐이지만 참 한이 형답다고 생각했다. 기지개를 쭉 피고 자리에서 일어나서야 뒤늦게 나뭇가지로 쓴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북서쪽으로 쭉 가봐라, 꼬맹아.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집이 하나 있더라. 시끌벅적한 게 즐거워 보였어.
-한-』
─리암, 어쩔래?
"가볼래! 즐거울 것 같아!"
한이 형이 남겨준 나무 열매를 주워 들고 북서쪽으로 향했다. 불안으로만 가득했던 걸음 걸음이 유쾌하게 느껴진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 걸음의 끝에서 만난 이들은 한이 형이 말한 그대로였다. 정말 그 말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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