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쵸로]수호천사
※마피아 오소X니트 쵸로
For. 솔
어렸을 때 그런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수호천사가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애니메이션. 어린 나는 언젠가 내 앞에 수호천사가 나타나면 무슨 소원을 빌 지 생각하곤 했다. 일단 형제들이랑 같이 쓰는 방말고 나만의 방을 달라고 해야지. 거기엔 내가 뒹굴거려도 남아도는 큰 침대가 있고, 책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가득 있는 거야. 과자든, 어묵이든, 뭐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때에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래도 부모님은 잔소리도 하지 않고 오냐오냐 나를 귀여워 해주는 거지. 어린 나는 키득거리며 어린 아이다운 상상을 새하얀 스케치북에 그리며 잠들었었다. 다 쓴 스케치북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듯이 나이가 다 찬 나도 그런 상상을 잊어버렸었다. 터무니 없는 꿈 대신 비참한 현실과 마주하며 이런 건 싫다고 미약한 발버둥을 칠 뿐.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눈을 감고 사회의 파도에 뛰어들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어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큰 방. 머리 위에는 눈부신 샹들리에가 약하게 흔들리고 있고, 눈 앞의 식탁에는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산해진미들이 펼쳐져있다. 그 한 가운데에서 나는 어울리지도 않은 녹색 체크 셔츠를 입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다. 은수저에 비친 내 표정은 내가 봐도 가관이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이곳에 안 어울리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려 맞은 편에 앉아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생글생글 앉아있는 남자는 눈이 마주치자 더욱 산뜻하게 미소지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쵸로쨩~"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내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고 말하는 그는 어릴 적 상상했던 수호천사가 아니라 마피아였다.
"쵸로쨩, 정말 그걸로 괜찮아? 더 필요한 거 없어?"
"괜찮습니다."
"말 편하게 해도 된다니까 그러네~ 아, 「오소군♡」이라고 불러주면 더 좋고?"
"그냥 반말만 할게, 오소마츠."
바로 말을 놓으니 오소마츠는 그마저도 좋은지 헤실헤실 웃었다. 웃는 모습만 보면 평범, 아니 오히려 성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해맑았다. 딱 보기에도 비싼 정장과 허리춤에 권총만 없었다면. 오소마츠가 달라붙어 있는 와중에도 권총밖에 안 보인다. 솔직히 스킨쉽을 좋아하지 않지만 저걸 보면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잖아. 애써 시선을 만화책에 고정하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는 나를 더욱 껴안으며 역시 더 필요한 거 있는 거 아니냐며 물었다. 고개를 가로 저으니 오소마츠는 잔뜩 볼을 부풀리며 부비적거렸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건 지 모르겠다. 알바가 쉬는 날이라 신나게 굿즈샵에 가서 지르고 나온 길이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검은 리무진이 서더니 날 그대로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게 바로 오소마츠. 보고 싶었다며 밑도 끝도 없는 인사를 건낸 오소마츠는 나와 굿즈까지 정중하게 이곳 아지트로 모셨다. 영문도 모른 채 굳어있는 나에게 오소마츠는 말했다. 뭐든지 해줄테니 자신의 곁에 있으라고.
"저기... 그렇게 있으면 만화 전혀 못 읽겠는데..."
"응? 신경쓰지 마, 신경쓰지 마~"
"신경 안 쓰고 싶어도 신경쓰인다고!"
"쵸로쨩이 날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감동이야...!"
순간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질색하며 바라보니 오소마츠는 그마저도 좋은지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다. 취향 이상한 녀석. 마피아라는 사실에 움찔거리기도 하지만 내가 이러는 걸 보니 나름대로 이 이상한 생활에 익숙해졌나보다. 처음에는 정말 경악 그 자체였다. 뭐든지 해줄테니 자신의 곁에 있으라니 말이야 방구야. 당연히 집에 돌려보내달라고 하니 예상했다는듯이 바로 퇴짜맞았다. 나중에 안 거지만 내 자취방은 이미 녀석들 손에 넘어가 팔리고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니 내 오타쿠 뇌는 2차 창작에서만 봤던 상황만을 떠올렸다. 이게 바로 납치, 감금? 난 이제 쇠고랑을 차고 평생 여기에서 능욕 당하는 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2차 창작은 2차 창작이었다.
오소마츠가 뭐든지 해주는 대신으로 제시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곳 아지트에서 오소마츠와 같이 지낼 것. 둘째, 외출을 할 때는 감시가 붙는다는 것. 셋째, 오소마츠가 보고 싶다고 할 때 돌아와야한다는 것. 넷째, 탈출은 물론 외부에 패밀리에 대한 이야기를 누출시키지 말 것. 다섯째, 마츠노 오소마츠를 사랑할 것. 이것만 지키면 뭐든지 내 마음대로였다. 인터넷 사용도, 가족들에게 연락도, 덕질도 뭐든. 솔직히 비인도적인 대우도 각오했기에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오소마츠는 이렇게 답했다.
「너한테 미움받기 싫으니까.」
양뺨을 붉게 물들이며 쑥쓰럽게 웃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지킬 자신이 없다고 하자 오소마츠는 그저 웃으며 지금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손등에 입을 맞춰주었다. 상대가 남자이긴 하지만 일평생 고백 한 번 못 받아본 동정의 심장은 가볍게 뛰었다. 일종의 계약 연애, 계약 동거지만 그런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탄하게 지내고 있다. 이런 생활에 거부감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알바에 지쳐있던 소시민에게 갑작스런 이런 혜택은 너무나도 달았다. 말만 하면 원하는 게 들어오는 생활. 조건이 달려있긴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생활이지 않은가. 그리고 솔직히 사랑받는 기분이 드는 것도 좋다. 무작정 집에서 뛰쳐나와서 혼자 외로이 근근히 살아가다가 날 사랑하고 아껴주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는 것. 이건 달다는 수준이 아니다. 아리다. 혀 끝까지. 결국 만화책을 덮고 오소마츠와 마주 보았다. 생기있는 눈동자에 내가 오롯이 담긴다.
"있지, 너는 대체 내 어디가 좋아서 이러는 거야?"
"음... 전부 다!"
"식상한 대답이네."
"너무하네! 그러는 쵸로쨩은?"
"음... 돈이려나."
"진짜 너무하네!"
울상을 지으며 매달리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둥근 두상이라 쓰다듬는 감촉이 썩 괜찮다. 문득 동생 생각이 나서 픽 웃으니 오소마츠가 날 보고서 따라 웃었다. 하여간 속 없는 녀석이다. 그래도 때때로, 아니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넌 정말 이걸로 괜찮아? 생각만 할 뿐 직접 말로 하지 않는 것은 이 미적지근한 생활이 끝날까봐 무섭기 때문이겠지. 나도 참 글러먹었다. 아니면 이기적인 걸까. 나 자신에게서 눈을 돌리며 오소마츠를 가볍게 안으니 오소마츠가 강하게 껴안아온다. 압박감과 담배 냄새에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아, 쵸로쨩. 아직 안 잤어?"
"책 읽다보니..."
방금 막 돌아왔는지 오소마츠는 부하들과 함께 문 앞에 서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부하들은 허리를 숙이곤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났다. 멀어져가는 부하들을 한 번 보고 오소마츠에게 다가가니 오소마츠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 오소마츠에게서 미약하게 피 비린내가 났다. 아. 전투 갔다왔구나. 흐트러진 데가 하나도 없고, 옷이 검고 빨간 색이라 핏자국도 티 나지 않아서 몰랐다. 그렇다고 피할 건 뭐람. 노려보니 오소마츠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너 마피아인 거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반응이 왜 그래."
"그게..."
오소마츠가 시선을 슬쩍 피하며 볼을 긁적였다.
"너한테 이 냄새 묻히고 싶지 않아."
뭐래. 기가 차서 가만히 있으니 피곤하지 않냐며 슬쩍 화제를 돌린다. 날 배려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선을 긋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 나와 너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그런... 사실이긴 하지만.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몸을 돌렸다. 오소마츠는 나를 잡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먼저 잘게."
"응, 내 꿈 꿔~"
애교 섞인 그 말이 조금 연기처럼 느껴졌다.
비가 오나. 빗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이내 창문이 번쩍거렸다. 한순간 환해진 방 안에서 나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았다. 또 왔네. 한숨을 쉬며 고이 자고 있는 네 볼을 콕 찔렀다. 타이밍 좋게 천둥이 쳐도 너는 꿈쩍도 하지 않고 색색 숨을 내쉰다. 아침에 일어났다가 옆에 오소마츠가 있는 것에 놀라 차버린 적도 있지만 제법 익숙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투에 나갔던 날만 이렇게 들어온 거겠지. 어둠 속에서 꼼꼼히 살펴본 네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서린 것 같았다. 뺨을 쓰다듬자 너는 조금 앓는 소리를 내더니 나에게 달라붙었다. 어린 아이도 아닌데 체온이 뜨겁다.
"쵸로마츠으..."
고개를 들어보니 너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잘은 몰라도 아까 그 잠꼬대가 나를 부르는 게 아닌 건 확실했다. 오소마츠의 부하들과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나도 귀가 있다. 나와 외모도 이름도 똑같은 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어도 아지트 내에 만연했다. 나는 그 대타이며, 나덕분에 오소마츠가 예전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네가 물질적인 나의 수호천사라면, 난 너의 정신적인 수호천사인지도 모르겠다. 그걸 처음 들었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지 너는 알까. 배신감도, 질투도 아니었다. 아, 내가 받기만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이었다. 그래서 더 뻔뻔스럽게 굴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인상을 쓰는 널 꼭 껴안고 등을 토닥이니 네 표정이 점차 개어간다. 그 모습에 살짝 웃었다가 입꼬리를 끌어다내렸다. 안도감. 딱 거기에서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오소마츠."
넌 정말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줄 수 있어? 한 순간 친 번개빛에 네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이 질문을 다른 식으로 말해보았다.
"널 좋아해."
쵸로마츠의 대타가 아닌 나 쵸로마츠자체를 사랑해줘. 밤이라 흘러넘치는 마음을 받아줄 사람은 자고 있다. 대타라는 걸 알아도, 아니 대타라는 것을 알았기에 네가 신경쓰였다. 인간의 욕심이란 참으로 잔혹하다. 온갖 산해진미와 원하는 모든 것이 있는데도 날 보던 네 눈빛, 미소, 애정어린 말 그 모든 게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박탈감이 들었다. 구멍을 메꾸려 했는데 오히려 내가 구멍이 났다. 네 가슴에 안기자 체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는 점차 꿈 속으로 나를 이끈다.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네가 깨어있을 때 말한다면 분명 기뻐하겠지. 그렇지만 네가 날 쵸로마츠라고 불러줄 때까지 말해주지 않을 거야. 심술궂은 내 마음을 대변하듯 천둥이 시끄럽게 울부짖었다.
햇빛이 눈을 찌른다. 비는 그쳤는지 새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온다.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몸을 뒤척이자 오소마츠가 늘어지게 하품하며 일어났다. 날 보자마자 붉은 눈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좋은 아침. 들려오는 아침 인사는 시럽 뿌린 핫케이크마냥 달콤하다.
"오소마츠, 나 배고파."
"나도~ 뭐 먹을까?"
"네가 좋아하는 거."
"앗, 내가 좋아하는 거 쵸로쨩인데 그럼 쵸로쨩 먹어도─꾸엑!"
"죽어."
진짜 덮치려 한 적도 없는 주제에. 홧김에 차버리고 몸을 일으키자 오소마츠가 잽싸게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바르작거리다 못 이긴 척 몸을 맡기자 오소마츠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오소마츠에게 안긴 채 창문을 올려다보니 큰 무지개가 떠올라 있었다. 오늘은 뭐해달라고 할까. 날이 좋으니 같이 나가자고 해볼까? 네 대답을 예상해보며 입을 열었다.
공백 미포함 4,046자
네, 이걸로 끝입니다. 뒤에 더 쓴 거 없어요.
ㅋ
ㅋ
ㅋ
ㅋ
저도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악! 분명 처음엔 포카포카하게 써야지~ 이랬는데 쵸로 시점으로 써서 그런가 쵸로 심정이 엇나가서....(책임 전가) 고통스럽다 ...왜 이렇게 되었지...? 리퀘글인데 이렇게 되버려서 너무 죄송해요ㅠㅠㅠ 포카포카 사라졌어ㅠㅠㅠㅠ(머리박) 오소마츠 시점으로 후설명 필요할 것 같긴 한데... 그건 미래의 저에게 맡기도록 합시다. 물론 안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아 개강하기 싫다!
다들 태풍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