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오소마츠상

[오소쵸로]애인이란 무엇인가요?

라나애 2018. 8. 19. 00:42

For. 프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 그건 용서받지 못할 마음을 품은 나에게 있어선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형이 나를 보며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떠올리면 설렘과 죄악감에 심장이 옥죄어왔으니까. 동성에 형제에 같은 얼굴. 그런 사람에게 사랑을 품는 것은 아마도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로 오소마츠형이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땐 믿을 수가 없었다. 상상과 다르게 오소마츠형은 웃지 않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도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나도 좋아한다고, 오소마츠형을 사랑한다고 말해야할 텐데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나와 사귀어줄래?'라고 힘주어 말하는 오소마츠형에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귀게 된 지 일주일. 나와 오소마츠형의 사이는 큰 변함없이 일직선을 그리고 있다.


"대체 왜?!"


짜증을 내며 읽고 있던 책을 던져버렸다. 「연애초심자를 위한 연애지침서」표지에 귀엽게 웃고 있던 여자는 바닥에 뒹굴다가 반으로 접혀버렸다. 서점에 갔다가 홧김에 사버렸지만 도움이 전혀 안 된다. 애초에 이런 책은 평범한 남녀가 사귄다는 걸 상정하고 쓰여지니까 나와 오소마츠형같은 예외에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스킨쉽이야 예전부터 계속 해왔고, 애칭같은 거 형제 사이에서 징그럽기만 하고 다른 형제들 시선도 신경 쓰이고, 밀당은 같이 살다보니 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오소마츠형에게 밀당이 가능한 지도 모르겠고..."


밀어도 당겨도 다가오는 한결같이 사람이니까. 그런 점이 좋은 거지만. 그래도 곤란하다. 겨우 겨우 사귀게 되었지만 이대로라면 나와 오소마츠형은 영원히 평행선이다.


"그건 싫어..."


기껏 사귀게 되었는데 계속 이 상태인 건 싫다. 이 상태로 쭉 가다가 오소마츠형이 나한테 질리면 어떡하지. 형제니까 아마 두 번은 없을 거다. 예전처럼 혼자 속앓이하던 때로 돌아가는 것은 절대 사양이다. 애인이니까 좀 더 애인다운 걸 하지 않으면... 오소마츠형이 가만히 있으니 내가 리드해야...


"그런데 그 애인다운 게 대체 뭐란 말이야."


애인, 연인, 커플... 뜻이 같은 단어들을 나열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창 밖에서 그런 날 비웃기라도 하듯이 매미들이 힘차게 울고 있다.


"오소마츠형! 우리 데이트 하자!"


"하?"


오소마츠형이 감자칩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과자 부스러기가 묻는 게 싫어 얼른 치우니 오소마츠형이 멍하게 날 보고 있다. 귀여워... 잠깐 다른 쪽으로 흐르려는 생각을 다 잡고 오소마츠형 눈 앞에 영화표를 흔들었다. 데이트하면 영화 데이트가 왕도 맞지? 팔락거리는 영화표에는 최근 개봉한 로맨스 영화 타이틀이 찍혀있다. 여전히 멍한 오소마츠형이 귀여워도 답답해서 손을 잡고 억지로 이끌었다. 당황하면서도 맞잡아주는 손이 따뜻하다. 얼른 가자고 보채자 오소마츠형은 작게 웃어주었다. 응, 좋은 느낌이다. 조금 커플다운 기분이 든다.


내가 갑자기 끌고 나간 거라 우리 둘 다 데이트에 어울리지 않는 후드 차림이었다. 나오고 나서야 아차싶었지만 이건 이거대로 커플티 같아서 내심 기뻤다. 중간에 다른 형제들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평일 한 낮의 영화관은 그야말로 한산했다. 팝콘을 사들고 상영관에 들어가도 앉아있는 사람은 극히 드믈었다. 마치 우리가 여기 전세낸 것 같네. 반농담조의 말에 어색하게 웃고는 먼저 자리를 찾아서 올라갔다. 긴장감에 손에 자꾸 땀이 찼다. 오소마츠형과 단둘이 앉아있으니 그제서야 데이트라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도 적고, 어둡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진도 뺄 수 있는 거 아냐? 흑심 가득한 생각에 영화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흘끔 옆을 훔쳐보니 오소마츠형은 지루한듯이 하품을 크게 하며 팝콘을 와작와작 씹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소마츠형 로맨스물 안 좋아하지, 참. 영화 잘못 골랐나 싶을 때쯤 오소마츠형이 팔걸이에 팝콘 부스러기가 묻은 손을 올려두었다. 순식간에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한다. 영화 소리만 없어서도 오소마츠형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지금이 찬스인가? 지금 잡아도 되는 건가? 영화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뭐라뭐라 화내고 있다. 팔걸이에 왼손을 올려놓고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에 다시금 땀이 차 미끄러지는 기분이다. 손가락 끝이 살짝 닿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바보냐. 스스로도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이니 옆에서 웃음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손이 잡혔다 싶더니 무게 중심이 왼쪽으로 무너졌다. 나는 오소마츠형에게 어정쩡하게 안긴 채 헛숨을 삼켰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전부 오소마츠형뿐이다.


"동정마츠."


"뭣...!"


"이런 짓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될텐데."


얄궂게 웃으며 오소마츠형은 맞잡은 손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영화관 안이라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붉어진 얼굴이 금세 들켰을 테니까. 입술이 닿았던 손등도, 얼굴도 너무 뜨겁다. 떨어지는 대신 오소마츠형의 옷자락을 살짝 움켜쥐며 안으로 파고 드니 심장소리가 들린다. 내 것이 아니야. 오소마츠형의 심장소리. 빠른 박자의 고동소리에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아, 데이트하러 가자고 하길 잘했다. 진짜 연인같아.


저녁까지 먹고 나니 벌써 저녁이다. 붉게 물들은 노을빛을 향해 새떼가 날아가고, 양옆에 쭉 늘어선 집들에선 밥 냄새가 난다. 고즈넉한 저녁의 풍경에 녹아들며 길게 늘어난 그림자 두 개가 서로 겹쳐진다. 형과 손을 맞잡은 걸 누가 볼까봐 불안하면서도 설레여서 기분이 들뜬다. 바닥만 보고 걷다가 눈동자를 데굴 굴리니 시선이 딱 마주쳤다. 노을빛을 받아서인지 오소마츠형의 눈도 붉다.


"쵸로마츠, 오늘 즐거웠어?"


"응? 으응..."


"그래? 그럼 그걸로 됐어."


오소마츠형은 웃으며 코 밑을 문질렀다. 환한 미소에 조금 힘입어 어렵사이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형은?"


"어?"


"오소마츠형은 어땠어...?"


"그야 나도 즐거웠지!"


밝은 목소리지만 어딘가가 찝찝하다. 연인이 되기 이전에 우리는 형제, 함께한 시간이 길다보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역시 로맨스 영화 고른 게 실패 원인일까... 혼자 끙끙거리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음엔 오소마츠형도 만족할 만한 데이트 코스를 짜올게!"


"엥? 뭐?"


"기대하고 있어!"


다음에는 꼭 내가 리드해야지! 어떤 식으로 할 지 생각하며 생글생글 웃으니 오소마츠형도 멋쩍게 따라 웃어주었다.


"쵸로마츠~"


"..."


"쵸로마츠으~!"


"..."


"아, 진짜! 쵸로딸딸스키!"


"누가 쵸로딸딸스키야!"


"이제야 이쪽 봐주네."


씩 웃는 모습에 가슴이 간질거린다. 아직 다 못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포스트잇을 붙이고서 책을 덮었다. 데이트코스 추천 책에는 이미 포스트잇이 한가득이다. 구겨진 포스트잇을 펴며 일부러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서 왜?"


"같이 낚시 안 갈래?"


"낚시? 됐어. 별로."


"왜! 낚시 가자! 같이 안 나간지 좀 됐잖아!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응?"


"낚시가 무슨 데이트야. 낚시는 다른 애들이랑도 갈 수 있잖아. 난 지금 이거 보느라 바쁘니까 다음에─"


"그딴 데이트코스가 그렇게 중요해?"


"그딴 거라니?"


내가 지금 누구때문에 눈이 빠져라 책을 보고 있는데! 평범히 카페 가면 지루해할 거고, 게임센터같은 곳은 이전에도 충분히 가봤고, 놀이공원은 가격 부담이 크고 머니까 가장 좋고 적당한 곳을 찾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 그동안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드는듯한 발언에 울컥해서 고개를 빼들었다. 오소마츠형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지금까지 열심히 책과 인터넷을 뒤졌던 건데 정작 내가 본 건 오소마츠형의 눈물이었다. 처음 보는 형의 눈물에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고백할 때도, 내가 울 때도 아니 그 이전부터 계속 우리 동생들 앞에서 눈물 한 번 보인 적 없는 사람이다. 그런 오소마츠형이 운다고? 혼란스럽고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일단 눈물이라도 닦아주려고 손을 들자 오소마츠형이 빽 소리를 질렀다.


"너 그냥 애인놀이 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 아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애인놀이라니..."


"며칠 전부터 데이트, 애인 노래를 부르고 다니잖아! 처음에는 그것도 귀여웠지만 이젠 지겨워! 그것때문에 나랑 같이 있어도 나 보지도 않잖아!"


나 외롭다고. 눈물범벅으로 흐려진 뒷말이 내 가슴을 사정없이 찌른다. 지금까지 오소마츠형을 위해서라며 해왔던 일들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간다. 마지막으로 오소마츠형이랑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게 언제였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오소마츠형은 얌전히 책만 보는 내 옆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해왔던걸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지금의 나는 울 자격같은 거 없어. 책따위 던져버리고 황급히 오소마츠형 곁으로 다가갔다. 바닥이 눈물을 머금고 진한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색하게 눈물을 닦아주니 항상 다정했던 눈동자가 매섭게 나를 노려본다. 심장이 뚝 떨어지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그냥..."


"그런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나 좋아한다고 말해봐!"


"지금?!"


갑작스러워서 반문을 해버리니 오소마츠형이 어이가 없다는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흔들리던 눈동자는 고개와 함께 아래로 떨구어졌다.


"...거봐. 역시 말 못 하잖아."


"그, 그런 게 아니라..."


초조하게 오소마츠형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따뜻하게 나를 잡아주던 손이 싸늘하게 내 손을 쳐낸다. 얼얼하게 아파오는 손을 붙잡고 오소마츠형을 바라봐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른 등은 내게 하고 싶은 말들을 억지로 참는 것 같았다.


"됐어. 나랑 놀아주느라 정말 고마웠다, 쵸로마츠."


오소마츠형은 웃었다. 정말 '형'답게 웃었다. 다시 몸을 돌린 오소마츠형은 느리게 일어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갈 기세다. 그대로 나가버리면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뻗은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오소마츠형이 멀어져간다. 겨우 형제의 선을 넘었는데, 겨우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형제니까 아마 두 번은 없을 거다. 예전처럼 혼자 속앓이하던 때로 돌아가는 것은 절대 사양이다. 언젠가 했던 생각이 내 등을 떠민다. 바닥을 기어가다시피하며 오소마츠형의 다리를 붙잡았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족한걸!!!"


"뭐...?"


"나는... 나는 오소마츠형을 사랑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가지 말아줘. 제발... 기어코 눈물이 넘쳐흐른다. 다리를 붙잡고 히끅거리면서 우는 내 모습 얼마나 꼴볼견일까. 그래도 절대 놓칠 순 없다. 얼마나 꼴 사납든, 얼마나 추하든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사랑하는 이를 잡을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망가져도 괜찮아. 몇 십, 몇 백번이고 사과하고 반성할게. 날 떼어내려는 움직임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더욱 달라붙었다. 위에서 떨어지는 한숨에 덜컥 겁이 난다. 이대로 날 차버리고 가버리면 어쩌지?


"쵸로마츠, 나 좀 봐봐."


걱정과 다르게 따스한 손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화가 조금은 풀린 건가 싶어 조심조심 떨어지니 오소마츠형이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오소마츠형 눈에 내가 똑똑히 보인다. 오소마츠형이 날 보고 있다. 오소마츠형은 다소 다급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붙들었다.


"쵸로마츠, 방금 거 다시 말해봐."


"어?"


"얼른. 빨리 말해."


잡힌 어깨가 얼얼히 아파온다. 오소마츠형도 그동안 이만큼 아팠던 걸까. 죄책감에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오소마츠형의 손을 꼭 붙잡았다.


"나, 나는 오소마츠형을 사랑해..."


"다시."


"오소마츠형을 사랑해..."


"한 번 더."


"사랑해, 오소마츠형..."


그러니 나도 사랑해줘. 제멋대로인 속마음은 눈물과 함께 삼켰다. 사랑은 달콤하다고들 하는데 나에게는 짜기만 하다. 숨을 크게 쉬며 울음을 참으려할 때 오소마츠형이 날 세게 껴안았다. 숨이 막힐 정도의 압박감에 눈물이 멈추고 오소마츠형의 체향이 나를 덮는다. 조심스럽게 허리를 감싸안자 오소마츠형이 우는듯이 웃었다.


"나도 사랑해, 쵸로마츠."


곤란하다. 오소마츠형의 한 마디에 겨우 멈춘 눈물이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행복해서 울면서도 사랑한다고 몇 번이고 속삭이니 오소마츠형도 울면서 사랑한단 말을 되돌려주었다. 성인 남성 둘이 울면서 뒤엉켜 있다니 제3자가 본다면 진짜 꼴볼견이겠지. 그래도 이게 우리의 사랑인가 보다. 사회에서 벗어난 사랑인만큼 특별한 사랑이다.


오소마츠형과 사귀게 된 지 3주째. 나와 오소마츠형의 사이는 느리고 서툴러도 확실하게 애인이 되어가고 있다.



공백 미포함 4,690자


아, 진짜 이자식들 내가 썼지만 답답하네! 연애 초반의 풋풋하고 서툰 삽질을 보고 싶었는데 네, 결과물이 이렇습니다. 제가 진짜 맞관삽질을 좋아하는데... 서로 사귀고 있으면서 삽질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귀었으면 예쁘게 사랑을 하라고, 이것들아! 그렇지만 그렇네요... 서툴고 서로 뱅뱅 돌고 어긋나기도 하는 게 오쵸답다면 오쵸다운 거니까요.

비루한 글이지만 부디 재미있게 보셨다면 좋겠습니다!